방송통신대 2018년 02학기 중간과제물 일본학과 2024년 2학기 중간과제물
자기 고향이나 고장, 거주지, 연고지 등에서 18세기(1799년)까지 한일관계사 사적지관련 최소 5곳 이상을 방문하여 사건 및 관련 사항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쓰는데 반드시 사적지 또는 유물을 배경으로 하여 본인의 얼굴이 들어가도록 촬영한 사진을 첨부한다. < 추천 지역 > 지역 추천 지역 1 서울 및 수도권 행주산성, 최영 장군 묘, 정몽주 묘, 신숙주 묘, 교동도 읍성, 강화도 내의 광성보 등 해안 방어시설 와 사찰 등, 이작도 해전의 현장 2 부산 및 경남권 자성대, 금정산성 부산 시립박물관 등 박물관 자성대 등 왜성(서생포 왜성, 기장 왜성, 울산 왜성 등) 왜관 터 및 읍성, 산성, 가야 고분 왜구 및 임진왜란 관련 전적지 각산산성, 분산성(김해) 3 대구 및 경북권 왜구 및 임진왜란 관련 전적지( 경북 영천의 최무선 기념관, 정몽주 출생지 포항의 정몽주 관련 사적지), 항일 투쟁(1799년까지)의 주요 인물, 예를 들면 의병 대장 곽재우 등 4 대전 및 충청권 각종 일본 관련 산성 및 전적지 (예를 들면 금산의 7백 의총) 장암진성, 백제 시대 당시 일본 관련 사적지, 무령왕릉 등 교과서에 나오는 사적지 해안가에 위치한 왜구 대비 성곽 등 해미읍성 5 광주 및 전남권 학습관 부근 또는 영산강 일대의 전방후원분 왜구 및 임진왜란 관련 산성 6 전주 및 전북권 남원 운봉읍 인월면 일대 이성계와 아지발도의 전적지 등 왜구와 임진왜란 관련 사적지 7 제주 왜구 침입에 대비해 해안가에 축성한 성 봉수대 등 삼별초 항몽유적지 <배제 지역> -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비원 등 서울 시내 고궁을 답사 대상으로 하였을 때에는 0점 처리함 <2018년도 특별 추천지역> 1 몽불산(夢佛山 : 병풍산, 전남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극락암(極樂菴) - 아래 사료에 나오는 장소의 사진을 찍어올 것 인터넷에 게재된 블로그의 글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감상이 담긴 글을 서술할 것 관련 사료 - 『고려사』 권121 > 열전 권제34 > 열녀(烈女) > 강호문의 처 문씨 강호문의 처 문씨가 왜적을 피해 투신하다 문씨(文氏)는 광주(光州) 갑향(甲鄕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사람이다 나이가 차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강호문(康好文)에게 시집갔다 우왕 14년(1388)에 왜구가 쳐들어 왔는데 광주의 군사들은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막아내지 못하였다(7월) 문씨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는데 젖먹이를 업은 채 큰 아이를 데리고 달아나 숨으려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적에게 잡혀버렸다 자결하려고 끌려가지 않으려 하자 적들은 목에다 밧줄을 묶어 앞장서게 하였으며 업고 있던 젖먹이를 버리라고 핍박하였다 문씨는 어쩔 도리가 없음을 알고 젖먹이를 싸서 나무 그늘에 놓아두고 큰 아이에게 말하기를, “너도 여기에 있으면 데리고 가 보호해줄 사람이 있을 게다”라고 하였지만, 아이는 억지로 따라 왔다 몽불산(夢佛山 : 병풍산, 전남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극락암(極樂菴) 근처에 접어들었을 때 높이가 족히 1,000여 척(500미터)이 넘는 낭떠러지가 나타났고 그 위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문씨는 같이 잡혀온 이웃 여자에게 말하기를, “도적에게 몸을 더럽혀 살겠느니 차라리 깨끗한 몸으로 죽겠다”라고 하며 아래로 몸을 던져 추락하였다 적들이 미처 막지 못하자 온갖 욕설을 퍼부은 후 아이를 죽이고 가버렸다 마침 절벽 아래에는 칡넝쿨과 부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었기에 문씨는 오른팔만 부러진 채 목숨을 건져 한참 뒤에야 깨어났다 앞서 절벽의 동굴에 피난 와 있던 ★★★ 마을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죽을 먹이고 보살폈다 사흘 뒤 적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로 돌아오자 놀라며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2 이작도 해전의 현장 - 소이작도와 대이작도 사이의 만(灣)의 사진이 잘 나오도록 촬영 『고려사』의 「열전(列傳)」의 변광수 전을 보면, 이 해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 “변광수는 공민왕 때 병마사(兵馬使)가 되었다 나라에서 전라도의 군수(軍需)와 조운이 왜적에 막혀 통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동북면의 무사들을 선발하여 교동 강화 동강 서강의 전함 80여 척을 모두 모아 변광수와 병마사 이선(李善)에게 명하여 군사를 나누어 가서 막게 하였다 대도(代島)에 이르자 ⓑ내포(內浦)의 백성으로 포로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그가〉도망하여 와서 고하기를, “ⓒ적의 복병이 이작도(伊作島)에 있으니 가벼이 나아가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선이 듣지 않고 북을 울리며 시끄럽게 가장 먼저 나아갔다 ⓔ적이 2척으로 아군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거짓으로 퇴각하였다 변광수 등이 ⓕ〈적을>추격하였는데 별안간 적선 50여척에게 포위되었다 ⓖ병마판관(兵馬判官) 이분손(李芬孫) 중랑장(中郞將) 이화상(李和尙) 등이 먼저 적과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적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여러 선군(船軍)들이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자가 10명에 8~9명이었다 ⓘ변광수와 이선 등이 바라보다가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니 군졸들이 크게 부르기를, “병마사가 어찌하여 사졸들을 버리고 도망하시는 것이옵니까? 원컨대 조금이라도 머무르고 있다가 나라를 위하여 적을 물리치소서”라고 하였다 변광수 등이 끝내 구하러 오지 않자 사졸들은 기대할 바가 없어 사기가 더욱 떨어져 이로 인하여 대패하였다 오로지 ⓙ부사 박성룡이 힘써 싸워서 몸에는 여러 개의 화살을 맞았지만 탄 배는 겨우 보전하였다 ⓚ병마판관 전승원(全承遠)과 판관 김현(金鉉) 산원(散員) 이천생(李天生)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적이〈그들을> 추격하기는 하였지만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였다 ⓛ적선 2척이 갑자기 서쪽으로부터 가로질러 공격하자 사졸들이 버틸 수가 없어서 모두 물에 뛰어들었으나 오직 전승원만이 힘써 싸웠다〈그는〉 ⓜ창을 여러 번 맞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헤엄을 잘 쳤기 때문에 죽지 않고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어떤 사졸 하나가 화살을 맞고 물에 떨어졌는데 뱃전에 매달린 채 올라오지 못하자 전승원이 끌어당겨서 배에 올라올 수 있었으며 밤낮으로 손수 노를 젓기를 3일 동안 하여 남양부(南陽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함 중 돌아온 것은 오직 변광수와 이선 등 20척 뿐이었으며, 교동 강화 동강 서강에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변광수 등이 끝내 이 일로 좌천되지 않으니 나라 사람들이 한스럽게 여겼다 후에 신돈(辛旽)이 변광수를 참소하여 삼척(三陟)으로 유배되었다” <위의 표 이외 자기 고장의 사적지 찾는 방법> 1 인터넷에서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를 쳐서 『고려사』,『조선왕조실록』에 들어간다 2 검색에서 ‘왜’ ‘왜구’ ‘일본’ 중 하나와 함께 지역명칭, 예를 들면 ‘전주’ ‘부산’ ‘목포’ 등과 같이 자기 고장이나 관심 지역을 써넣어서 관련 사료를 읽어본다 3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에서 ‘왜구, 부산’을 치면 총 108건이 뜹니다 그 기사를 읽어보고 ‘부산포’(현재의 증산 부근)에 가서 사진을 찍고 관련 내용을 쓴다 또 ‘왜구, 남해’를 검색창에 쓰면 총 32건이 나오는데 그 기사를 읽어보고 남해도의 미조항 등에 가서 사진을 찍고 관련 내용을 쓴다 이런 방식으로 ‘왜구, 전주’ 또는 ‘왜구, 광주’ ‘왜, 마산’ ‘왜, 한양’ ‘왜, 강화도’ 등 얼마든지 검색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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