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 시험비교

 1  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 시험비교-1
 2  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 시험비교-2
 3  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 시험비교-3
 4  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 시험비교-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 시험비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시대 상황에 적합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 중요 업무의 하나인 것 같다. 중앙집권 체제가 완비된 조선시대는 과거제도 등을 통해서 관리를 선발하였다. 과거제도는 전문지식과 인격적 소양에 대한 평가절차를 거쳐 관리를 선발하는 관리등용시험이었다.
현대 공개채용시험도 능력 있는 인재를 관리로 공정하게 선발하려는 것이 국가의 큰 업무이며, 기본적이고 중요한 통로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현대의 공개채용시험의 특징들을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현대에까지 큰 틀이 이어지고 있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보다 나은 공무원 선발을 위한 지혜와 교훈을 과거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Ⅱ. 조선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시험 비교
1. 시험 종류 및 과목
크게 국가의 인재를 선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농경 사회의 기반위에 유교이념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했던 시대라 국가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에서 유교적 통치이념과 유교적 소양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문과, 무과, 잡과로 구별되어 있지만 문과만을 볼 때 현대의 직종 구분과는 달리 구별없이 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문적인 소양보다 일반적 유교이념과 폭넓은 지식을 지닌 관료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현대의 공개채용시험은 여러 종류의 직류들로 세분화되어있어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제도의 과목을 살펴보면 유교적 이념이 강조되었던 사회인만큼 유교경전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사서, 오경, 경학 등을 보았다. 현대에서는 이와 다르게 직렬에 따른 과목으로 시험을 실시하여 전문성을 높이고자 했다. 문과를 위한 예비시험의 성격을 가진 생원, 진사시와 같은 시험은 현대 공개채용시험에서는 없다.
2, 응시자격 및 절차
조선시대는 경국대전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양인이면 누구나 문과싷머에 응시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양인들은 시험준비에만 전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고 양반자제들이 대부분 응시하였다. 하지만 현대공채시험은 남녀, 학력, 경력, 집안배경과 무관하며 사실상 평등, 경쟁시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문과의 경우 초시-복시-전시가 일반적이다. 이는 현대 5급 행정, 외무고시와 형식이 비슷하다. 현대에도 1차 선택형, 2차 논술형, 3차 면접을 거쳐 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경우 전시는 합격의 여부를 가리는 시험이 아니라 합격한 33인 중에서 순위를 가리는 시험이었으며 왕이 직접 참가한다는 점에서 인재등용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과의 합격기준은 두 문제를 출제하였을 경우 응시자는 두 문제를 모두 답해야만 했으며, 초장 강경에서 조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만 했는데, 이는 현대의 과락제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 현대 과락제도는 시험을 본 후 전체 평균점수가 합격점수보다 높다 하더라도 단 한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을 받게 되면 전체 평균점수와 상관없이 과락으로 불합격처리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과목의 편중된 공부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유사점이 있다.
3. 시험제도의 이면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로는 책을 가지고 들어가거나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경우, 다른 사람이 대신 답안지를 작성하는 경우, 시험지를 빨리 내려는 협잡, 사관과 짜고 특정인의 시험지를 알아보게 하거나 시험문제를 미리 가르쳐 주는 것, 시험장에 드나드는 입문유린, 답안지를 바꿔치는 정권분답, 시험장 밖에서 답안을 작성해서 가져오는 외장서입 등이 있었다. 부정행위가 드러나는 경우 파방(罷榜), 삭방(削榜), 정거(停擧)를 시켜 일정 기간 과거 응시를 금지시켰다. 또한 차작, 대술이 성행하면서 합격자들은 실제 답안 작성자인지 의심받게 되어 전시전에 복시에 합격한 자들을 대상으로 답안지를 다시 작성하게 하는 면시제도가 도입되었다.
참고문헌
※ 참고자료 ※

-정현진(2009),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현대 공개채용시험 비교」,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김경용(2004),「조선시대 과거제도 시행의 법규와 실제」. 敎育 法學 硏究, Vol.16 No.2
-김판석,윤주희(2000), 「고려와 조선왕조의 관리등용제도 -과거제도의 재해석-」.한국사회와 행정연구, Vol.11 N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