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외정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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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대외정 책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국은 건국이래 기본적으로 평화공존과 자주외교를 표방해 왔으나 외교정책의 내용면에서는 시대에 따라 적지않은 변모를 거듭해 왔다.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중국외교의 기본 체제는 1953년 중·인회담(中·印會談)에서 주은래(周恩來)가 제창한 평화공존 5원칙이다. 평화공존 5원칙이란 영토의 보전과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으로 1953년 12월, 중국의 고(故) 주은래(周恩來)총리가 인도대표단 접견시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다. 이 원칙은 1982년 중국헌법에 명확히 기재되므로써 중국이 세계 모든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수립·발전하는데 있어서 기본원칙이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외교노선에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80년대 후반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아세안 국가들의 급격한 성장과 소·동구권의 몰락, 세계 경제의 블럭화 추세, EC통합 움직임 등 국내외 변화 추세는 중국의 위기감을 증대시켰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 중점을 둔 외교노선을 걷게 되었고, 실용주의적 균형외교를 추구하게 됐다. 이는 중국의 개방·개혁정책과 연관이 되어 중국의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의 외교노선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1989년 6월의 천안문사태였다. 천안문사태로 중국은 개혁·개방정책보다 대외강경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국내정치의 안정을 꾀하는 노선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이는 서방측의 경제제재를 초래하여 국내경제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인권문제를 둘러싼 서방측의 압력은 자주적인 외교정책 수행에 커다란 제약이 됐다.
1989년 가을 당 제 13기 5중전회(中全會)에서 지도체제를 개편한 후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탈피와 대외 이미지 회복, 경제건설에 주력할 수 있는 환경조성 위해 적극적으로 서방측과 외교관계개선을 추진했다. 또한, 아시아 주변국가들과 다각적이고 폭넓은 외교를 펼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과는 대등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아시아에서는 제 3국가들을 중심으로 아시아 중심 외교를 펼치게 됐다. 요컨대 중국은 경제건설이 가장 최우선시 되는 과제인 것인 만큼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서의 주도적인 역할보다 서방측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정불간섭과 자주독립, 상호의존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은 구체적이고 집행적 문제의 경우에는 외교부, 대외연락부,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등 담당기관에서 구체적 관계정보를 동원하여 직접 결정 처리하고, 타기관과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관계기관간의 비공식적인 토의를 거쳐 결정한다. 그리고 최고 정책을 결정할 경우에는 국무원의 상무위원회나 당서기처에서 결정하지만 외교문제가 국가의 주요사항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경우에는 정치국에서 결정한다.
1) 외교노선(外交路線)
2차 대전 후 구축된 냉전체제하에서 50년대 초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충돌한 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제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봉쇄와 미국의 대만 국민당 정부에 대한 지원 강화에 따라, 중국은 1950년대 말까지 친소 외교정책을 고수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이후 모택동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의 소련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사회주의권 내에서 소련과의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다. 중국의 핵무기 획득에 관해 소련의 견제가 심해지고 국경문제가 발생하자 대소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여, 결국 소련이 중국 대한 기술과 경제원조를 중단하게 이르렀다.
1960년대 미·소 양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중국은 제 3세계의 저개발국가의 기수로 자처하고 이들 지역의 혁명지원 활동을 강화했다. 특히, 문화혁명이 고조되고 소련과의 대립이 심화되기 시작하면서 중·소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중국은 50년대의 소련 의존도를 탈피, 자국의 실질적인 독립 실현과 국제 공산주의 혁명의 지도자 및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외교노선으로 전개했다.
1968년 11월 소련의 체코침공과 1969년 3월 진보도사건은 중국의 대소 경각심을 고조시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관계정상화를 시작했다. 특히, 소련의 위협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대미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한편, 1971년에는 유엔에 복귀하게 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도 중국의 위치를 확고히 굳히는 계기가 됐다. 마침내 1970년 대 말 중국은 현대화계획의 목표달성을 위해 전방위 외교를 표방하고 서방과의 관계 강화에 주력했다. 그리고 제 3세계에 대한 혁명지원을 감축하고, 아세안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1980년대 들어서서 중국은 평화공존 5원칙과 함께 정상적인 국가관계의 유지·발전 및 국가 현대화 계획에 유리하도록 국제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방면으로 외교노선을 정하고, 미·소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양국에 대해 균형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1990년대에는 1989년의 천안문사태로 실추된 대외이미지 회복 및 걸프전후 미국주도의 신국제질서 재편 움직임을 견제하면서 중국이 참여하는 신국제정치·경제질서 확립을 외교노선의 기본으로 채택했다. 이 외교노선의 기본방침은 최근 이붕(李鵬) 총리(1991. 1), 전기침(錢其琛) 외교부장(1991. 2) 등이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으로 강조했다. 이 때 나온 중국외교정책의 기본 요점을 알아보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주변정세 안정을 도모하고, 대 서방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기술협력 재개와 동시에 미국주도의 신국제질서 재편을 견제·반대함으로써 중국의 대외적 위상을 제고한다. 러시아와는 관계개선을 통한 안보환경을 개선하며, 아·태질서 구축에서의 주체자적 역할을 비롯, 제 3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