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 고흐의 별밤과 꿈을 그리는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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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흐의 별밤과 꿈을 그리는 화가들
9월 19일. 서울엔 가을비가 내렸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 조용히 내리는 빗방울이 매말라 있던 피부에 닿아 퍼진다. 길위에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그런 서울의 일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 폭의 그림처럼. 무지개색, 각기 다른 우산의 색들이 서울의 도로위에 물감을 짜놓은 듯 내 눈에 그려지는 것이다. 도로 위를 걷고 있던 나는 곧장 발길을 예술의 전당으로 옮긴다. 오르세 미술관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라며 광고에서 어지간히 떠들고 있던 참이였다. 머릿속엔 오직 고흐 라는 단어만 줄기차게 그려진다. 그리고 나의 소박했던 꿈. 화가. 상상. 어느새 미술관 앞에 도착한다.
미술관에 들어와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느릿한 발걸음에 맞추어 보려 애를 써본다. 좀처럼 쉽게 되질 않는다. 그것은 입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알렉상드로 카바넬 작품 비너스의 탄생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비너스는 에로스한 몸짓으로 사랑에 취한 듯한 표정으로 나체인 상태에서 바다 위에 누워있다. 그녀의 주변엔 아기천사들이 각기 다른 몸짓과 표정으로 낮게 날고 있다. 허나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니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든다. 바로 아기천사들의 표정이 사랑스러움이라던지 행복을 전달한다는 등에 내가 알고 있던 관념에서 벗어난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너스를 바라보는 표정은 마치 술에 잔뜩 취해 여자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돈많은 사회 지도계층의 눈빛으로 다가온다.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몸을 금방이라도 안을 듯한 긴장감을,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은 술병을 들고 병나발을 부는 듯한 모습으로 쾌락에 흠뻑 취한 듯한 평온한 듯 하면서 그 안에 묘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바로 옆에 보이는 작품 파포스의 비너스는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와 작품의 이름은 같지만 비너스를 묘사하는 방식은 다르다. 파포스의 비너스는 여신 혹은 여인이라는 아름다움 자체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며 초상화의 인상이 강하다. 세련된 나체의 여성, 몸매의 곡선이나 주변의 감귤로 보이는 나무와 멀리 보이는 집이 어딘가 모르게 원근감을 자아내며 인물을 강조해주는 효과를 준다.
이렇듯 작품의 인물은 같지만 작가에 세계관에 따라 다르게 그려질수 있음을 비교해주듯 두 작품은 나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그림들을 감상하다 벽면 한 쪽을 넓게 차지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데 조르주 로슈 그로스의 작품인 꽃밭의 기사였다. 제목부터 단순 명료하여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보면 제목 그대로 기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넓은 꽃밭에서 머리에 꽃을단 여럿 요정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남자로써 무척 참기 힘든 강한 충동이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체의 여인들에게 둘러쌓인 축복이란, 그림 속 기사가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마음속으로 중얼 거릴 찰나, 앗! 요정들의 표정이 범상치 않다. 저것은 유혹의 도를 벗어나 인간에게 공포로 엄습해올 여지가 다분한 표정을 지닌 몇 명이 그림속에서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의 뒷 이야기가 무척 궁굼해지는 건, 작품의 참신한 표현 방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세히 보니 기사가 입고 있는 은빛 갑옷에 주변 꽃밭과 요정이 반사되어 얼룩져 보이는 세밀한 묘사와 바람에 날리는 요정의 머릿결, 다양한 색채감을 활용한 아름다운 꽃밭의 풍경은 작품의 이야기와 상반되어 이질감을 통한 극적인 효과를 전달해주는 작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걸을 물러서면서도 저 요정이 다음에 변할 표정 혹은 몸속에 숨은 요괴가 튀어나와 기사를 물어 뜯게 될 그림을 상상해보았다. 다음 그림으로 앙리 루소의 전쟁을 보게 되었다. 여태껏 전시관을 둘러보며 그림을 보았을 때 루소가 그린 이 작품처럼 딱딱하고 판화에 찍힌 듯한 그림은 처음이였다. 작품이 참으로 평면적이고 수업시간에 배운 관념적 묘사 혹은 개념적 묘사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만큼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녹아있는 그림이며 전쟁이 주는 인간의 사악함과 잔혹함을 땅바닥에 누워있는 썩어가는 시체들 그것을 파먹는 까마귀와 그림 가운데 말 인줄 알았으나 얼굴을 보니 개미핥기처럼 생기어 돌연변이라고 밖엔 딱히 설명히 힘든 말을 타고 있는 전쟁의 여신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그림에 담겨있다. 그 당시 작가가 느끼는 공포라는 감정을 거칠고 격정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보인다. 이렇듯 감상문엔 네 개의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아 개인적인 해설을 적어 보았는데 지금까지 본 그림들은 여러 테마별 중 신화 그리고 문학과 음악, 역사 이다. 성서의 이야기나 신화와 전설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주제들이나 당대에 유행했던 이야기로부터 주제를 차용하여 이러한 작품들이 남게 되지 않았는가. 또 문학과 음악에서는 그들이 그림 속에 담은 인물들의 욕망과 광기, 회한들을 시나 소설 혹은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인용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그 내용 그대로 답습한 결과가 아닌 자신만의 형태와 색채의 언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정신적 교류를 통해 미적인 환타지를 공유하고자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꽃밭의 기사’ 와 같은 작품이 음악의 몽환적 모티브와 색감에 환타지가 결합되어 심오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넘어가서 역사를 바라볼 때 지금 오르세 미술관 작품들은 19세기의 것들로 연도로 나온 것은 (1848년~1914년) 당시의 시대 상을 바라볼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역사에 있어서 전쟁과 내분은 빼놓을 수 없었으며 이것은 작가들에게 여러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몇몇 작품들이 그렇다. 공통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상처들로 인물의 처참함들을 담긴 작품들을 여럿 볼수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반전(反戰)의 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나 보다. 다시 말해 비극적인 모습들로 인해 쟁의 무자비함을 알리고 싶었다라는 것에서 수업시간에 배운 누군가에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서술적 묘사 기법이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지금 그림 속 19세기 까지 이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되어진 그림에 흠뻑 취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한시간을 지나오자 가족 그리고 노동, 여가라는 테마로 나뉜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인상적인 작품으로 화가 톨로우와 그의 아이들 이라는 작품이였는데 이 그림은 가족들의 서로 다른 시선과 행동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아버지로 보이는 화가는 담배를 불고 딸아이를 한손엔 팔레트를 한손으로는 딸아이를 안아주듯 보이지만 무언가 가족 사진이라 하기엔 무미건조한 느낌이 묘하게 느껴지며 다른곳을 응시하는 아들의 시선은 전제척으로 이 가족이 느끼고 있는 불안이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당시 프랑스가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적인 혼란으로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톨로우와 그의 아이들이라는 작품 외에도 여럿 작품에 작가의 심경이 반영되어 있음을 볼수 있었다. 가족은 아마도 당시 화가들의 고집 혹은 장인 정신을 이해해줄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가 아닐까? 다음 이 테마중 내 마음을 애잔하게 울리기도하며 전시관이 열리는 지구로부터 어딘가 다른 머나먼 우주에 보내기도 한 그림을 말하고자 한다. 카미유 피사로의 추수가 바로 그것이다. 그림을 보면 밀레의 만종과 같은 소작농의 삶을 보여주며 그 속에 평온함을 담아내려 하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속의 비슷한 현실은 존재할지 몰라도 농촌과 농민의 삶 만을 표현해내지 않고 더 나아가 농민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일체감을 표현해 낸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런 들판, 녹음이 짙은 큰 나무와 멀리보이는 숲, 푸른 하늘과 구름의 조화는 프랑스의 풍요로운 혹은 자애롭기한 마을로 발길을 옮기어 바라보고 있는 듯 하였다. 에밀 베르나르의 추수 라는 작품 또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누런 들판의 색이 보는이에게 넉넉함과 차분함을 동시에 가져다 주며 당시 산업화로 인해 경제적 혼란 시기로 농촌에 자리잡고 있던 여러 인력의 손실을 오히려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줌으로서 어떤 상징성을 담아내지 않았는가 싶다. 인간의 삶에 노동이 있다면 심신을 달랠 수 있는 여가가 빠져선 안된다. 당시 작가들에겐 여가 또한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필립 윌슨 스티어 작품의 해변의 젊은 여인은 영화속 아니 명화속 한 장면, 필름의 한 컷을 때어내어 붙인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혹시나 오르세 미술관을 보러가게 된다면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이 그림을 볼 때 절 때 가까이 안전 바 앞에서 바라보고 지나가지 않길 바란다. 가까이서 본 후 다섯 걸음 뒤에서 한번 더 바라보길 바란다. 분명 그림속 여인의 얼굴은 명확히 그려지지 않아 눈 코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수가 없지만 해변에서 바람을 느끼고 있는 여인의 표정을 보는이가 충분히 상상을 가능케 해주는 작품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19세기 여행과 같은 여가 활동은 가장 새로운 삶의 모습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파리라는 대도시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들판 혹은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작가는 반영하고 그림에 반영하고 싶지 않았을까? 자연 풍경속에서 산책이나 피크닉, 보트 놀이 등은 많은 화가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와 다채로운 그림들로 이 곳 전시회를 가득 채울수 있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통로의 끝에 적힌 출구 라는 글씨가 조그마하게 보이다가 점점 크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전시회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나 보다. 마지막 테마가 있는 것으로 천천히 걷는다. 인물 초상화가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인물화 장르다. 인물화 장르 중 모네의 작품을 비롯 여러 작가의 작품들 중 인상이 오랫동안 남는 몇 개의 작품이 있다. 모네의 작품인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은 작가의 심경이 잘 남아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 그림을 보면 고디베르 부인의 얼굴은 뒤를 돌아보고 있어서 부인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집안 구조, 장신구, 드레스 등 인물 주변에 드리워진 화려한 물건들의 뛰어난 색채감이 더욱 빛이 난다. 이것은 작가 모네의 어려운 가정환경이 결국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이든다. 인물 초상화이면 당연 얼굴의 정성이 들어가야 마땅하지만 이 작품은 그 외의 것에 정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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