괸당은 꽃인가 잡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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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국제적 평화 도시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관광 도시인 제주.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을 빚어준 제주. 그러나 제주의 깊은 애환과 그 속에서 피어난 괸당을 아는 이는 드물다. 괸당…. 그것은 눈물의 땅에서 자란 꽃일까, 잡초일까?
괸당은 친척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으로 「제주도 속담사전」(1999)에는 “친족과 외척, 고종, 이종 등 멀고 가까운 친척을 두루 일컬으며, 이들은 집안에서 혼례나 장례를 비롯해서 관심사가 있을 때 모여들어 서로 돕고 걱정하며 정분을 돈독히 하는 것이 관습화 됐다.”로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괸당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제주는 외지인으로 부터 많은 핍박을 받아왔다. 고려시대 항파두리 성을 쌓으며 삼별초를 도와 몽고에 항쟁했지만, 결국 패하여 몽고인의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또 유배지로 유명한 제주는 유배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큰 부담을 지고 있었다. 더구나 이런 제주에 목사로 부임한다는 것은 좌천인사여서 목사로 부임한 자들은 임금께 잘 보이기 위해 제주사람들을 마구 착취했다. 특히 특산물인 감귤에 대한 착취가 극심하여 목표 생산액을 달성하지 못한 백성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제주사람은 당시 각 가호마다 한 그루 이상씩 있던 감귤 나무들을 모두 말라 죽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먹는 제주 감귤도 실은 일본에서 들여온 종이다보니, 2014년부터 일본에 매년 수십억에 달하는 로열티를 지불해야할 판국이다.
본디 섬사람인데다가 육지에서 오는 사람이라곤 먹여 살려야할 유배인들 아니면 뭐 가져갈 것이 없나 하고 살피는 탐관오리들 밖에 없으니 육지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을 찔렀다. 실제로 한국 교회 최초 목사 7인 가운데 한 명인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 선교를 할 때, 값의 몇 배를 쳐준다고 해도 물건을 팔지 않고 도리어 매질을 당했을 정도로 육지인에 대한 제주사람들의 적개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거기에 4.3 사건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제주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제주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굉장한 슬픔이었으며, 이후 오랫동안 제주도지사는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을 정도로 제주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내가 제주에 살 때 노무현 前 대통령께서 직접 와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하고, 4.3 공원을 건설하는 등 한창 4.3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매년 4월 3일이 되면 도 차원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등 4.3 사건의 슬픔은 오늘날에도 제주사람의 삶 깊은 곳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
도둑 대문 거지가 없는 3무의 섬이자, 관광도시인 제주는 사실 이와 같이 슬픔과 애환의 역사를 가진 슬픈 섬이다. 그래서 어쩌면 ‘평화의 섬’이라는 수식어에 목숨을 거는지 모른다. 이처럼 외부의 고통이 극심하기에 외지인은 배척하지만, 같은 이웃사촌끼리는 대문조차 만들지 않을 정도로 막역하게 지내며 서로 돕는 문화가 바로 괸당문화다.
이러한 괸당 문화는 오늘날에도 제주 사회 깊숙한 곳에서 기능하고 있다. 제주도민이 관광지를 이용할 경우 무료 혹은 50% 할인을 받도록 의무화 되어 있으며, 과거 차량 번호판에 지역명이 표기되었을 때에는 제주 차량의 경우는 공영주차장 이용요금을 슬쩍 눈감아 주는 일도 가끔 있었다. 혼례를 치를 경우 일주일 넘게 마을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는데, 마을 사람들도 집에 오면서 쌀이며 반찬 등을 가져다주며 서로 나눠먹는 인심을 종종 볼 수 있다. 버스비도 없으면 다음에 내라고 슬쩍 타도록 눈감아 주기도 하는 등 우리가 소위 말하는 시골 인심보다 더 한 것이 제주의 괸당 문화요, 제주사람들의 삶이다.
또한 괸당은 애향심으로 이어져 제주어보존회, 제주어 학회, 제주어 교실, 제주어 말하기 대회 등 제주만의 문화를 보존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괸당 문화는 종종 외지인에 대한 배척으로 표출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제주 우주센터, 제주 해군기지, 영리병원 설립 등 제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정부의 정책들이 좌초되거나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외지인에 대한 극도의 배척심이 표출된 하나의 형태일지 모를 일이다. 그 외에도 제주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외지인에 대한 극도의 폐쇄성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나 행정 기관의 승진, 포상, 선거 등 모든 것이 괸당 문화에 영향을 받는 문제도 심각하다. 제 아무리 서울대를 나와도 제주대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고, 제주 선거는 야당도 여당도 아닌 괸당이 이긴다는 말은 유명하다. 그래서 제주 선거에서는 어느 정당이냐가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무소속이 당선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외지인이 무슨 사업을 할 때 제주 사람이 끼지 않으면 필시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지나친 괸당 문화는 강화된 연고주의의 형태로 표출되어 제주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가 국제적 관광도시로 부상하며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해 지고, NEW 제주운동의 노력으로 이러한 괸당 문화의 문제점들은 많이 개선되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외지인에 대한 바가지나 불친절은 몇 년 사이에 굉장히 많이 개선되었으며, 연고주의 문제 역시 공론화가 많이 되어 조만간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적어도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학교에서 만큼은 괸당적 차별을 쉽게 체험할 수 없었음을 볼 때, 지금의 어린 세대가 기성세대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물려받지 않고 창조적으로 계승해 나간다면, 괸당문화의 모난 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극복되리라 믿는다.
괸당이라는 문화는 비록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도시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정(情)의 문화다. 괸당과 함께 했기에 비록 제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나를 포함하여 제주를 떠난 초등학교 친구들이 하나같이 제주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괸당의 연고주의적 측면을 제외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도덕적 집단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살아있는 도덕 교과서’가 바로 제주와 괸당문화라고 나는 평가한다.
서두에서 괸당이 눈물의 땅에서 자란 꽃일까, 잡초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거기에 꽃이라고 당당히 대답하고자 한다. 비록 꽃 옆에 난 잡초가 눈에 거슬리지만, 그것은 뽑으면 될 따름이다. 그리고 그 일은 자라나는 제주의 청소년들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선대의 꽃을 보며 그 옆에 자란 잡초를 뽑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괸당 청년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가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