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 관념의 형성 변천 충효 관념의 형성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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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충·효 관념의 형성 (어원)
「중산왕정」에 보이는 금문자형을 첫 忠자로 본다. 금문 忠자의 윗부분은 中이다. 소리이기도 하고 형태이기도 하다. 치우치지 않은 가운데를 표시하는 깃발의 상형이다. 우리말의 중심에 가까운 말이다. 忠자는 그렇게 中과 心을 합친 회의문자다. 『상형자전』에 따르면 忠은 내적으로 마음이 공정하고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는 글자였다고 한다. 『설문해자』에는 “忠은 우러러 공경하며 뒤따르는 것이다.”고 한다.
마서륜은 『좌전』 「성공 9년」의 ‘무사’와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가 ‘일관’하다고 한 것을 忠의 본의로 본다. 우인덕은 고대의 忠자는 깃발을 꽂아두고 거기에 ‘집중’시킨 씨족사회 풍습을 반영한 글자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忠자는 처음에 가운데라는 현상에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관념으로 정립된 듯하다.
갑골문 학자들은 대체로 考, 老, 孝자를 같은 맥락의 글자로 보며 구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조상에 대한 제사가 일상생활이었던 은나라의 갑골문시대에 죽은 조상과 나이든 어른을 나타내는 글자형태는 아주 많이 발견된다. 그것들은 거의 모두 孝로 읽을 수 있다. 갑골문 윗부분은 나이가 들어 머리카락이 긴 사람을 뜻하는 자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 아들, 즉 후대를 뜻하는 자를 아래에 붙여 결합한 회의문자이다. 『상형자전』에는 노인이 위에 있고 어린 아들이 아래에 있도록 한 것은 자손들이 노인을 부축하는 것을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부모나 어른을 잘 봉양하고 어른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설문해자』에서는 “孝는 부모와 어른을 잘 받들어 모심을 뜻한다. 老자의 아래 匕를 생략하고 子자를 붙인 회의문자이다. 어린 아들이 노인을 받듦을 표시한다.”라고 한다.
2. 공자 이전의 忠·孝 관념
은나라 때 조상을 존중하는 풍토가 효 관념의 출현 및 발전과 깊은 관련을 맺었을 것이다. 『서경』 「태갑 중」편에 따르면 은나라 사람들은 그만큼 봉선사효, 즉 조상을 받들고 孝를 생각했다고 한다. 서주시대에 이르러 귀족들이 이를 더욱 개발시켰다. ‘유효유덕’, 즉 부모를 잘 섬기는 孝를 유덕한 행위로 보고 천지간에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치장하게 되었다.
서주 초기에는 孝와 忠이 동일한 정치적 덕목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을 기초로 한 씨족 단위의 조상숭배가 정치적 관념으로 승화한 것이 종법이다. 은나라 말 성립된 이 관념은 주나라 초기 국가의 주요 이념이자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은나라와 주나라의 정치권력은 가부장적 종법제도가 확장된 형태를 띠었으며, 왕권과 부권은 동일시되었다. 다시 말해 주나라 정치관계는 군신관계인 동시에 가족관계였던 것이다. ‘孝’는 가족관계와 정치관계에서 다 같이 중시하는 윤리 관념이 되었다. 孝 관념은 춘추시대에도 크게 강조되었다. 춘추시대에는 가부장적 전제사상을 군명의 절대화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적 복종의 강요는 군주전제의 실현과 잘 맞아떨어졌다.
‘忠’이 정치적 의미를 지닌 관념으로 등장한 것은 孝보다 늦다. 忠의 초기 관념은 사람의 내부로부터 발현되는 치우치지 않는 진심을 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忠이 인간 내면의 진심을 표현하는 관념뿐이라는 얘기는 아니며 군주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뜻하는 관념으로도 쓰였다. 『좌전』 「희공 5년」의 “忠과 敬을 잃으면 어떻게 섬기겠는가?”의 忠도 내면의 진실한 마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군주를 섬기는 덕목으로 얘기되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충성’ 관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내면의 진실한 마음’을 뜻하던 忠 관념이 춘추시대부터 군주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군주의 명령은 아버지의 명령처럼 절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군명이나 부명을 어기는 것을 관념적으로 단죄해야 했으며 이는 ‘불효’, ‘불충’으로 표현되었다. ‘불충’을 나쁜 관념으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군주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하도록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3. 제자백가의 忠·孝 관념
孝는 『논어』를 지배하는 핵심 관념이다. 예컨대 『논어』 「학이」편에서 “孝悌야말로 仁의 근본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仁은 공자사상의 총 강령이다. 공자는 孝를 단순히 부모자식 사이의 윤리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작용도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논어』에 忠은 18차례, 孝는 19차례 등장하는데 둘 다 중요한 관념이다. 「팔일」편의 “군주가 신하를 禮로 부리면 신하는 군주를 忠으로 섬긴다”에서처럼 군주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忠이 쓰이는 경우도 몇 차례 있지만, 대부분은 「학이」편에서 증자가 “다른 사람과 일을 하면서 忠하지 않은 적은 없는가?”를 반성한다는 경우처럼 내면의 진실한 마음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어』의 孝 관념을 삶과 정치의 모든 관계로 의미 확장을 하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 『효경』이다. 『효경』은 ‘孝’ 관념의 극치를 보여준다. 『효경』의 관념은 매우 분명하다, 어버이를 잘 모시는 것이 孝의 기본적인 출발이지만, 그와 같은 태도로 군주를 섬기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는 ‘몸을 세워 도를 실천’하는, 다시 말해 ‘후세에 이름을 떨치는’ 위대한 행위를 하라는 요구다. 유가는 가족관계의 윤리를 국가 및 천하의 윤리로 확장시켜 온 세상이 도덕적이 되는 이상 사회를 꿈꾸었는데, 『효경』은 그 구체적 통치이데올로기로서 孝의 작용과 역할을 선언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맹자는 孝를 부모에 친애하는 관념이 정치적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맹자는 그의 인정론의 근본을 ‘孝’에서 찾았는데, 「만장 상」편에서 순임금이 나라일이 바빠 아버지 고수를 잘 섬기지 못한 것을 따지는 제자의 물음에 대하여 “효자의 극치는 부모를 존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부모존중의 극치는 천하를 가지고 봉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天子의 아버지가 되는 것은 존중의 극치이며, 천하를 가지고 봉양함은 봉양의 극치이다. 『시경』에 ‘영원히 효성스런 생각을 말하니, 孝야말로 만사의 준칙이로다’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한다.
순자 또한 孝의 정치적 기능을 매우 중시했다.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孝의 기본 관념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인의 이상 정치를 수행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자』 「성상」편에서는 “백성들이 효제를 알고 덕이 있음을 존중한다”라고 한다. 孝를 유덕한 정치가의 덕목으로 취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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