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존재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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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유와 존재의 관계
현대철학에서 근대를 반추할 때 여전히 ‘생산적 충격’을 주는 인물은 칸트와 헤겔이다. 이들은 주객 통일, 유한과 무한의 통일, 반성과 이념의 통일을 정초하는 최종근거로 ‘자기의식’을 제시한다. 자기의식은 현대의 주체의 해체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점이며, 상호주관성 이론,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적 패러다임 이론 등을 도출하는 지반이다. 그리고 독일관념론의 전개를 거슬러 올라갈 때, 자기의식은 칸트 이후 헤겔로까지 이어지는 문제사적 발전의 정점이다.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들은 이 존재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철학이 있은 이래로 줄 곧 제기된 가장 본질적인 질문 중의 하나였고 많은 철학자들이 여기에 대해서 다양한 답변들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근대적 인식론이 대두되기 전까지는 심오한 문제에 속하기는 했으나 적어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미리 주어진 신앙과 독단적 이념이 그 존재 문제를 미리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질문은 온전한 인식 기관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 다시 말해서 감각적 인식 기관에 의해서 포착되는 것만이 존재한다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이고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철학에 있어서는 그의 유일한 과제인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 인식활동에 착수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절대자를 포착하는 데 필요한 도구나 혹은 바로 그 절대자를 간취하는데 필요한 수단이 된다고 여겨지는 인식에 관하여 미리 터득해 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염려를 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없지도 않으니, 즉 그 하나는 인식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 중의 어떤 것은 철학의 궁극 목적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좀 더 능숙한 방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듯이 자부함으로서 자칫하면 그 여러 종류 중에서 잘못된 방법을 택할 수 있는 것이며, 또 다른 경우에는 인식이 그 스스로의 본성이나 한계에 관한 명확한 규정도 내리지 않은 단지 특정한 양식과 범위를 차지하는 일개 능력에 지나지 않은 까닭에 이것이 진리의 천국이 아닌 오류의 헛 구름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이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인식의 획득 이전에 우리가 인식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과 인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헤겔도 자기의 인식과정을 전개시키기 전에 전통적 인식이론 ? 존재와 지식, 주관과 대상 등의 이원론 - 의 비판부터 시작하며 그 대표적인 경우로 칸트의 예를 든다.
독일관념론사에서 ‘자기의식’을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과 주객 통일의 최종근거로 견인해낸 철학자는 칸트다. 칸트는 인식의 근거를 신의 보증이 아니라 ‘범주연역’에서 정초한다. 칸트에게 인식이 일어나려면, 감각경험의 소여성이 있어야 하고 이를 법칙에 따라 규정하는 범주활동이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경험을 규정하고 질서짓는 범주는 경험의 연상작용을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선천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경험이 주는 출생증명서와 전혀 다른 출생증명서”를 제시해야 하므로, 칸트는 범주자체의 기원과 정당성을 찾아나가는 범주연역을 단행한다. 칸트는 오성을 범주능력으로 본다. 경험의 다양이 주어질 때 오성의 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며, 이 때 범주활동이 이루어진다. 경험의 직관이 일어날 때 범주가 작동하는데, 이것은 달리 보면 사고작용이다. 사고는 ‘판단작용’으로 환원되므로, 범주는 ‘판단’에 기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감각적 소여성에 기인하는 특정한 표상에 특정한 선천적 범주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여전히 문제시되기에 범주가 경험대상들과 “선천적으로 상관할 수 있는 방식을 설명하는” ‘선험적 연역’이 시도된다. 칸트는 다양을 모든 의식을 ‘동일한 하나의 의식’으로 종합하는 ‘자기의식’을 선험적 연역의 최종근거로 제시한다.
칸트는 자기 의식의 통일에 기초한 선험적 통각과 구상력의 자발적인 인식활동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인식은 절대적 권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관적 형식에 주어지는 현상계에 대한 인식만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리하여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을 유한한 주관적 능력에 제한하고 이러한 인식능력의 본성과 한계를 규정하려는 데 그 과제를 두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유한한 인식능력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 한계지어진 수학적ㆍ자연학적 인식에서만 보편타당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수학이나 자연학의 확실성이 소위 선험적 종합판단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밝힌 칸트는 이를 근거하여 선험적 종합판단이 인간의 여러가지 인식작용에서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밝히게 된다. 이를 위해서 칸트는 여러 종류의 인식능력을 열거하는데 감성, 이성, 구상력, 판단력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감성이란 대상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 다시 말해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여러 가지의 제반 표상들을 수용하는 능력이며, 오성이란 주어진 대상을 사유하는, 다시 말해서 감성이 수용한 표상들을 범주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결합하여 경험을 발생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험이란 감성과 오성 이 양자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칸트는 경험의 내용은 외부의 대상에서 받아들이고, 형식은 인식하는 주관 측이 그 내용에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칸트 인식론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성에 대한 독특한 설명이다. 칸트는 개념의 능력인 오성에 대해서 이성을 추리의 능력이라고 불렀다. 오성은 감성과 함께 작용하며 따라서 감성의 도움이 없이는 경험적 인식을 낳지 못하지만, 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작용하여 스스로의 이념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경험의 지반을 떠난 이성의 추리는 결코 확실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영혼의 본성, 세계의 시작과 종말, 물질의 무한 분할 가능성, 인과적 필연성과 자유의 문제, 신의 존재 등의 문제는 어떠한 경험도 의존하지 않은 순수이성의 산물이기에 필연적으로 독선적인 오류나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칸트는 선험적인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성이라는 개념을 동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순수 이성 비판』이라는 저서 명이 말해주듯이 어디까지나 그의 이성개념은 라이프니츠, 볼프 이래의 순수이성의 철학(독단적 합리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인 만큼 현실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성은 어디까지나 경험의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인식작용의 영역을 고립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서 우선 인식 형식을 인식 내용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이 구성은 즉자적으로 있는 바와 같은 사물들이 인식과는 독립해서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헤겔이 보기에는 칸트가 이런 방식으로 인식을 검증하려는 것은 인식을 도구나 매체로 보는 자연적 통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칸트는 인식행위를 인식도구를 사용하는 능동적 작업으로 여기거나 인식대상이 인식형식을 통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인식은 인식되어야 할 본래적인 것과 순수하게 일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때의 인식은 인식도구를 통해 변형된 대상이거나 인식매체를 통해 수동적으로 인식주관에 굴절된 대상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과 물자체는 절대적으로 분리되며 동시에 절대적인 것과 인식주체 역시 분리된다. 물론 칸트는 물자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감성적 직관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의 인식가능성을 부정하였고 "도구나 매체의 이 음미되지 않은 주요 상(像)때문에 자기의식의 개념 본성에로의 통찰을 차단하고 있는 것" 이다. 따라서 인식이란 현상에 대해서만 가능하다는 칸트의 이러한 이론은 헤겔에게는 결국 사물자체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회의주의로 이해되었다. 헤겔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물자체, 즉 절대자로부터 분리된 지는 진정한 지로서의 역할이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이원론적 대립을 헤겔은 오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진리마저 버리는 비철학적 태도라 단정짓는다.
헤겔이 보기에 칸트의 이러한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모든 지에 선행하는 어떤 출발점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데카르트가 그의『성찰』에서 "이미 나는 내가 극히 명석하고 극히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은 모두 진실하다는 것을 일반적인 규칙으로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처럼 사물을 명석 판명하게 지각한다는 이유에서 그가 존재하고 또 그러한 사정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이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진실하다는 전제를 이미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만일 지에 대한 주장이 어떤 인식론적 견지에 입각하여 음미되어야 한다면 그러한 인식론 자체가 이미 지에 대한 주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끊임없는 순환만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악무한적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동시에 유일한 실재론적 인식은 감각적 경험에 의해 증명되는 명제 중에서만 존재한다는 경험론자의 주장도 흄의 경우가 잘 말해주듯이, 인식론적 딜레마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인식의 근거를 감성적 차원에서 확인하려는 경험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인식론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정신 활동에 관한 경험적 연구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며 동시에 오직 이러한 연구에 의해서 인식론이 확립 될 수 있다는 식의 순환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자기의식은 대립과 통일을 ‘자기의식’과 ‘절대적 자아’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식 자체’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자기의식이 자신의 대립을 산출하고 통일시키면서 근원적 동일성을 정초하는 메타적인 과정은 『대논리학』, 특히 ‘개념론’에서 가장 잘드러난다. 그러나 헤겔 체계 전체 및 『대논리학』전체가 자기의식의 전개이기 때문에, 순수한 자기의식의 자기관계에서 출발하여 자기의식의 자기매개적 구조로 완결된다는 지평은 『대논리학』자체나 ‘개념론’ 자체만으로는 정초될 수 없다. 왜냐하면 헤겔의 체계가 자기의식의 전개라 해도, 헤겔에게 자기의식은 단적으로 먼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헤겔에게는 ‘대상연관적 의식을 자기의식과 연관시키고 순화하는 과정’과, ‘순수한 자기의식 자체의 논리적 구조 및 개념적 전개를 위한 선행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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