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모든 물음은 저마다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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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하버마스 ( 1929년 6월 18일 - )
_ ‘모든 물음은 저마다 가치가 있다.’
Ⅰ. 생 애
하버마스는 1929년 서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곳 상공회의소 소장으로 비교적 부유한 공무원이었다.
그의 성장기는 2차 세계대전이 휩쓸던 무렵이었다. 하버마스는 15살에 당시 그 또래들이 그렇듯 히틀러 소년단에 들어가 복무해야 했다. 그리고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 뉴른베르크 나치 수용소에 대한 기록영화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하버마스는 이런 엄청난 죄악을 알지도 못했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도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비로소 정치와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1949년, 20살에 괴팅겐 대학에 입학한 그는, 스위스 쥐리히 대학을 거쳐서 1954년 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박사학위 논문을 끝낼 무렵, 그는 하이데거가 1935년에 쓴 "형이상학 서설"을 읽고 충격을 받는다. 나치의 지배가 한참인 시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자의 책 속에는 독일 대학의 ‘보수적’답게도 시대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비판은 한 줄도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호르크하이머(Horkheimer:1895~1973)와 아도르노(Adorno:1903~1969)가 같이 쓴 "계몽의 변증법"은 청년 하버마스에게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비판이론’, 혹은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부르는 학풍에 제 1세대에 속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의 이성은 인류를 야만에서 해방시키고 발전시킨듯하지만 사실은 재앙으로 떨어뜨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엄청난 재앙은 결국 과학 문명이 나은 결과다. 그럴듯한 명문과 고상한 말을 내세우지만 이성으로 무장한 인류가 저지르는 폭력은 그 어떤 야만인들보다 가혹하고 잔인하다.
‘과학’이라는 잣대가 모든 다른 가치보다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을 평가할 때도 상대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인간적인가 하는 것보다 무슨 능력이 얼마만한 수치로 있고 어떤 쓸모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인간들 스스로도 상대를 이용과 억압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판이론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인간의 이성, 즉 합리성의 근원적인 결함에서 찾고 분석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제 1세대 거장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견해를 편다. 그는 비판이론가들이 비난을 퍼붓던 인간의 합리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물질 문명의 여러 문제들을 이성 자체의 결함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아직 이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본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비판이론을 새롭게 사회정치적인 언어철학으로 확대시켰다. 그는 현대 언어학의 도움으로 이상적인 언어행위 체계를 기획하고 그 체계의 규범과 규칙에 따라 강제 없고 지배 없는 의사소통으로 자유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는 길을 제시했다.
1954년, 그는 비판이론의 본고장인 ‘프랑크푸르트 사회 연구소’의 연구조교로서 비판 이론을 계승하게 된다. 그리고 1964년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호르크하이머의 후임으로 철학과 사회학 교수로 취임했다. 이로써 그는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이 이끌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1971년, 이후 학생운동권과의 논쟁을 계기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81년까지 막스 플랑크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981년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출간한 2년 뒤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로 재취임한 후부터, 1995년 퇴임할 때까지 ‘근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 ‘사실성과 타당성’(1992) 등 수많은 연구 성과를 양산해 냈다. ‘실증주의 논쟁’(1961~8)을 비롯해 ‘좌파 파시즘논쟁’, ‘하버마스-루만 논쟁’,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등 연속적인 논쟁을 열정적으로 벌여왔다.
현재 그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의 명예교수, 영국과학원 등의 멤버로서 세계각지로부터의 초청 강의를 하면서, 합리성에 기초한 보편주의적 이념을 전파하고 있다. 1996년, 한국방문을 하여 강의를 하기도 했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인권 탄압 등 세계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생기면 어김없이 신문에는 하버마스의 논평이 실리곤 한다.
Ⅱ. 사상
♣ 이성에 대한 믿음
하버마스의 사상은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바탕이 된다. 그는 인간해방과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비판적 사고활동이 갖는 잠재력에 주목한다. ‘어떤 불신과 불리한 조건에서도 사회통합을 향한 합리적 토론은 포기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다.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둔 대화를 통하여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성적 낙관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성은 논증과 공개적인 토론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다. 믿음에 근거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우리들의 행위, 의견, 그리고 기대들을 뒷받침 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우리의 잘못을 통찰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일상적 실천에 뿌리박은 의사소통적 이성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