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Stevens The Pre-Secular Politics of Paradis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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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Paul Stevens
The Pre-Secular Politics of Paradise Lost
1667년 『실낙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 서사시의 뛰어남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나 이 시에 작가의 공화주의적인 정치적 견해가 여전히 드러난다고 느꼈던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한 예로 왕당파 목사였던 John Beale은 처음에는 친구인 John Evelyn에게 “밀턴이 시를 어찌나 잘 쓰는지, 자네도 나처럼 그가 산문으로 쓴 적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라며 내게 웃으며 말하게 될 걸세” 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는 『실낙원』을 다시 읽어나감에 따라 이 시에 스며있는 정치적 색채에 점점 놀라게 된다. Beale은 사탄의 신성모독 외에도, 밀턴이 Nimrod “공정한 평등, 우애”의 상태에 만족치 않고, 다른 이들의 반역에 대해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은 하늘로부터 “주권”을 부당하게 요구하여 다른 이들의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독재자(PL 12.24-82)
를 찰스 1세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그렸다는 것에 분노를 표했다.
Beale은 이 구절에서 국왕살해를 옹호하는 밀턴의 신념이 변치 않은 채 “시”라는 형태로 재구성되어 나타남을 읽어낸 것이다. 당시에는 내전의 기억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이 시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늘어감에 따라 이 시의 직접적인 정치적 맥락은 특별한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그 후 18세기 말 즈음, satan을 낭만주의적 이상화의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분석하기도 하였으나 이 시의 당면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근대 비평에 이르러서야 지속적인 분석이 이루어진다. Christopher Hill의 1977 Milton and the English Revolution은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정치적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접근방법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은 이 시의 정치적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이냐에 관한 논쟁이 좀처럼 하나의 결론으로 다다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Alastair Flowler가 주장한 바 있듯, 시인의 정치적 견해가 시의 종교적미학적 구조 안에 너무도 견고하게 엮여있어 그 어떤 섣부른 정치적 우화화도 거부하는 듯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밀턴의 이 시에 Beale처럼 동요된 독자들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던 것에는 아마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John Hobart경은 68년 1월 “밀턴은 범죄자이며 완고한 사람일 것”이라고 했으나, 『실낙원』에 관해서는 “그보다 더 위엄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계가 있는) 내 이해력에도 적절한 것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 해도 이 시는 매우 정치적이며 자유와 그에 따른 (자)주권의 속성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밀턴의 성향을 고려해 볼 때, 특히 “믿음으로 (신에 의해) 의롭다 여겨짐(justificaion by faith)”이라는 프로테스탄트적 이상이 그의 인문주의적 학식을 통해 굴절된 것을 고려해 보면 달리 될 순 없었을 것 같다. 여기서는 정치적 자유와 주권에 대해 이 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밀턴의 내러티브 중 3가지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첫 번째 내러티브는 미가엘이 아담을 교육시키는 부분, 두번째는 성부에 대한 성자의 도전, 그리고 세 번째는 satan이 신에 대해 도전하는 부분이다. 성경의 내용을 서사시로 다시 쓰는 시도에 있어 밀턴은 시를 잘 쓰는 자신의 천부적 자질을 펼치는 것 자체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논쟁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하여 스스로 신 앞에 정당성을 획득하고 동포-시민들도 잘 교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를 위해 현대의 종교사상가인 John Milbank와 Charles Taylor가 “세속 이전의” 정치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Justification and Education
『실낙원』이 나올 때 즈음까지 ‘성서를 기반으로 한 서사시’가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밀턴의 시도는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고, 특히 Andrew Marvell은 밀턴이 성서의 신성한 진리를 망친 것은 아닌지 염려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는 권위와 근거는 “오직 믿음”(solfa fide) 이라는 프로테스탄트적 소신에 기인한 것인데, 이는 밀턴에게는 고백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다.
밀턴은 『실낙원』 집필의 가장 큰 목적을 “인간에 대한 신의 뜻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하지만 사실 신은 방심한 나머지 신성에 관해 다소 분명하게 해두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밀턴에게 제대로 말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니다. 밀턴은 어둠이란 나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장 사적인 차원에서 이 시는 자신의 선택을 입증하기 위한 신의 정의에 대한 시인의 믿음을 공표하는 행동, 즉 신념의 드러내는 행위이다. 이는 신이 주신 재능을 깨닫고 믿음을 가능케 하는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신의 뜻이란 밀턴에게도 궁극적으로는 이성적 인식가능 범위 밖의 것이며, 현명한 이들에게도 어리석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린도전서 1:23)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는 DDC De Doctrina Christiana
에서 “신에 관한 문제를 논의할 때에는 이성을 작동시키기 보다는... 오직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따라가자..” 고 한다. 이렇게 주장할 때에 그의 인문주의적 면은 프로테스탄트적 믿음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하지만 이때 그의 시는 “믿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실용적 차원을 지닌 발화행위”로서 기능한다.
밀턴은 “오직 믿음으로”(solfa fide) 이라는 사도 바울의 가치를 절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저작물 모두에 걸쳐 믿음은 “행동으로 보여주는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DDC에서 밀턴은 “우리는 믿음으로써 정당성을 부여받는데, 죽어있지 않은 살아있는 믿음으로만, 즉 행동하는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밀턴에게는 프로테스탄트적 면모와 인문주의적 면모는 놀라울 만큼 합쳐진 상태로 실행(praxis)되어 덕목 있는 행동을 정치적인 것으로 보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는 부득이한 것인데, 만약 『실낙원』이 “믿음”의 “ 행위”라면 사람들의 삶에 1660년이 지난 이후에도 “좋은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시일 뿐인 『실낙원』이 어떻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시를 통한 “교화”는 이것을 가능케 한다: 이 시의 미학적 힘이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지녀 행동하게 하거나, 혹은 밀턴이 『아레오파기티카』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다시 기억해내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항상 학자보다 더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our sage and serious Poet Spencer than Scotus or Aquinas).” 이는 시가 다른 직접적인 발화행위와는 달리 독자들의 의식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건강한 시민사회가 확립되려면 그 어떤 헌법적 구성보다는 개인의 도덕적종교적 교육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밀턴이 『실낙원』을 집필하는 중에 쓴 1660년의 소책자 『자유공화국 수립을 위한 준비되고 쉬운 길』에서 절절히 외치고 있는 부분이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선택된 이들이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것으로 부패하고 그릇된 교육을 바꿀 것이고 , 참된 덕이 결여되지 않은 믿음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롭고 자주권을 가지고자 한다면 그저 단순히 교화가 아닌 “참된 덕이 결여되지 않은 믿음”, 즉 “신의 은총에 대한 감수성”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왕정복고 이후 밀턴에게는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그로서는 이미 계획한바 있었던 이 시를 쓰는 방법보다 이를 더 잘 행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1660년대 초 이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자유공화국 수립을 위한 준비되고 쉬운 길』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음은 전혀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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