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론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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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서론
- 청대(淸代)의 회화 경향
명 왕조 역시 말기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피폐해지며, 잔혹한 통치로 결국은 이민족인 만주족에게 멸망하게 되고, 1644년 북경이 함락되고 청(淸)이라는 나라가 설립되게 된다. 청왕조는 소수민족 출신의 황제가 통치하는 통일된 다민족 국가였으므로 자연히 국경 내 여러 민족 문화교류가 강화되었고, 소수민족의 미술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각 민족미술의 상호 교류가 촉진되었다. 이 시대 회화에 있어서도, 명청 대는 송원 대에 비하여 화가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한 화파와 화법의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는데, 원대 문인화의 전통을 이은 동기창(董基昌) 중심 필묵의 의미를 추구하는 문인화 계열은 청 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남화의 전통을 이룬 ‘사왕오운(四王吳)’의 육대가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주의를 고집하며 계승해 가는 화파들과 명의 쇠퇴와 명망, 만주족의 침입, 내란과 이에 따른 수십 년간의 혼란에서 명의 충성하며 새로운 왕조의 지배를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하거나, 기인으로 살아갔던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을 중심으로하는 유민화가 사승(四僧)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대담하게 개성을 표현하여 창조적인 경향을 띠는 혁신적 개성주의 화가들이 있다. 또한 중기에 이르면 북경과 양주 두 곳이 회화의 중심지가 되는데, 북경은 사왕과 운수평의 화풍을 이어 경직되는 방향으로 회화 경향이 이어지나 양주에서는 동남지역의 상업중심지로서 회화가 발달되는데, 이선(李鮮), 왕사신(汪士愼), 김농(金農), 황신(黃愼), 고상(高翔), 정섭(鄭燮), 이방응(李方膺), 나빙(羅聘)등의 여덟 명을 가리키는 양주팔괴(揚州八怪)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청초 사승의 전통을 이어, 사의 화조화를 발전시키며 더욱 호방하고, 고졸하며, 개성이 넘치고, 문인과 속인이 같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제작하였고 현실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들은 초상화, 혹은 계화(界畵)영역에서 새로운 업적을 이루었으며,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서 문호를 개방하며, 근대화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상해, 광주, 천진 등이 해안 도시로서 발전하게 되었고, 특히 상해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중국의 최대의 국제무역항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경제가 발전하게 되어 양주에 이어 새로운 회화의 중심지로서 입지 하게 되는데, 당시 상해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을 해파(海派)라 하며, 사의적 작품을 즐겨 그려 일반 대중의 기호에 맞는 그림을 제작하였다. 산수화보다는 묵색이 물씬 풍기고 필치가 통쾌한 화훼절지의 신문인화 등이 많고, 대표적인 작가로는 오창석(吳昌碩)을 들 수 있는데, 운치 있는 고전의 석고 문체를 잘 썼고, 웅건한 필치로 화훼를 잘 그려 새로운 문인화 예술을 이루었다. 이러한 청 대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화가들은 훗날 미술학교에서 교육을 하며 제자를 길러내, 회화적 전통이 계승되어 지금에까지 이르는 현대 화단의 본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청 대의 회화의 경향 중, 초기 선승화가들로서 문인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개성적인 작품활동을 했던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사승화가
‘사승화가(四僧畵家)’는 네 명의 승려화가인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 석도(石濤, 1642-1718), 곤잔(殘, 1612-1973), 홍인(弘仁, 1640-1664)을 자칭하며, 모두 개성적인 양식을 이룩하여 청대 초기회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강렬한 반청의식을 지니고 명이 망한 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서 청조에 굴복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 곤잔(殘, 1612-1973)
곤잔의 속성은 유(劉)이고 호는 석계(石溪), 전주도인(電住道人) 등이고 호남성 예릉(禮陵)인으로서, 명이 망하자 저항군에서 싸우다가 승려가 되었으며 1659년에 황산을 여행하고 아름다운 경관에 영감을 받아 그림에 전념하였다. 말년에는 남경에 있는 큰절의 주지로서 근엄하며 은둔자로서 생활하였다. 동기창의 영향을 받았고, 황공망, 왕몽의 화법을 따랐지만, 메마른 덤블로 문지른 것 같은 필치로서 ‘자신의 세계’를 표현했으며, 산과 물이 중첩되는 구도가 많으며 필묵은 깊이가 있고 중후하다. 작품으로는 , 등이 있다.
- 홍인(弘仁, 1640-1664)
원명은 강도(江韜), 자는 육기(六奇), 승려가 된 후에 호를 점강(漸江)이라고 하였고 안휘성 흡현(縣)출신으로 명이 멸망하자 1646년에 승려가 되었고 황산을 비롯한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림에 몰두하였다. 주로 예찬의 화법을 따라 간결하고 담백하며 세련된 필묵으로 황량하고 적막한 산수의 의경을 그려 내였으며 깨끗하게 정련 된 듯한 산수화는 세속을 초월한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엄격격하고 독특하며, 구도에 사실적인 수목의 표현으로 청의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세상 밖의 황산을 그린 것이다. 황산의 모습을 그린 산수화로 이름이 높았고, 안휘성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들을 일컫는 안휘파(安徽派)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전하는 작품으로는 , , , 등이 있다.
2 석도와 팔대산인
명말 청 초는 각지에서 문인화가가 배출되어 남종화의 전성기가 되었다. 그 사이에 이색적인 화가라 불릴 수 있는 화가로 진홍수(陳洪綬), 부산(傅山), 매청(梅淸), 공현(賢), 사사표(査士標), 점강(漸江), 석계(石溪)가 있지만, 명조의 유민 화가 가운데 고대화풍을 모방하는 풍조 외에 뛰어난 천재화가는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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