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노수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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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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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인간관
낭만주의가 이성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며 감수성을 중시한 루소에게서 전조를 보여, 격렬한 감정을 토로하는 문학과 예술분야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한데반해 계몽주의는 이성에 의지하여 정신의 평형과 균형, 감정의 절제를 강조하는 편이었다. 이는 17세기 후반부터 루소시대 이전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혼돈, 무질서에 대해 안정을 염원하는 분위기애서 나왔다. 계몽주의의 가치관을 예술영역에 반영한 신고전주의는 이성을 중시해 동작과 감정까지 절제한 나머지 죽음과 수면을 동일시하는 차분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양산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이 반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감정 절제의 가치관이었는데, 이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도달할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세계라고 보았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상 사이의 대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꿈에 대한 해석인데, 계몽주의는 꿈을 감각의 경험에서 비롯되며 기계적 법칙으로 설명될수 있는 자연현상으로 축소시키고자 했고, 낭만주의자들은 꿈이 신적인 실재와 접촉을 갖는 것이며 그에따라 인간 내면의 숨어있는 시인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그들은 인식론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는데, 칸트는 감각인식을 인정하면서도 로크의 경험론에서 나타나는 지식 형성의 전적인 수동성을 비판하고 선험적으로 인간정신에 내재된 인식요소를 인정하여 종교, 도덕, 예술상의 진리와 과학의 동등한 타당성을 인정하여 낭만주의의 인식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계몽주의의 이성의 의미는 진리의 발견과 결정에 지침이 되는 독특한 지적인 힘이었으며, 이러한 진리의 두 기둥인 이성과 관찰에 의해 그들은 종교, 정치, 도덕 각종 제도를 자연과학자들처럼 탐구하면서 비합리성이 드러날 경우 이를 부자비하게 비판하고 그 변혁을 요구하였다. 특히 유물론은 교회의 독단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는데,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의 반종교적성향에 반발하여, 느낌을 중시하고 자연속에서 신을 찾고 그와 교류하려는 종교관을 내세웠다.
2. 사회관
낭만주의의 특성은 개인주의와 유기체적 사회관, 그리고 이 둘의 조화에 있다. 그것은 게몽주의특히 자연법 사상에서 나타나는 보편성 원리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개성주의나 유기체적 사회관은 보수주의 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보수주의는 단지 봉건적 잔재나 지역별 차이를 해소하려는 관료적 행정적 합리주의와 맞섰던 단계를 벗어나 부르조와 합리주의와 대결하여 그 사상적 기반 전체를 역으로 삼을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대응논리를 낭만주의에서 찾았다. 낭만주의의 영향은 보수주의 사상에 국한된 것이 아닌, 맑시즘 사상에도 영향을 준 것이었다.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의 보편성을 전제하며 그에 따라 인간적인 여러 가치의 보편적 적용을 확신하였고, 이에 대한 로맨티시즘의 반발이 개성주의 또는 개체주의로 표출되는 한편 유기체적 사회관으로도 표출이 되고 있다. 유기체적 사회관은 사회는 발전의 내적 법칙과 과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온 유기체적 통합체이므로 이를 무시한 이념과 제도의 무차별적 인식을 거부하는 사상이다. 이는 보편성에 대한 부정인 동시에 사회는 고립된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원자론적 사회관에 대한 거부이다. 따라서 전체에 대한 개인의 예속적 관계가 전제되므로 훗날 전체주의의 싹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유기체론은 당시 혁명시대의 혼돈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며 제도의 붕괴와 전통적 유대의 해체에 직면하여 귀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체험한 당혹감을 반영하는 것이았다. 계몽주의, 자연법사상, 사회계약론등은 개인 대 사회라는 이분법을 동원해 여러 권리의 근거를 사회, 국가보다는 자연상태의 개인에게 두어 국가 권력에 윤리적 제약을 가하면서 동의에 의한 통치와 저항권을 내세움으로서 봉건적인 사회적 유대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려는 혁명이념을 가졌다.
한편 individualism이 경우에 따라 개성주의와 개인주의로 각각 해석될 여지가 있는데, 이를 독일식으로 해석할 경우 개성, 개인의 독창성, 자아실현이라는 로맨틱 관념에 강조점을 두고 처음에는 천재적 개인을 예찬하는데 적용하다가 그후 공통체, 주로 민족이나 국가에 관한 유기체론으로 발전되는 것을 볼수 있다. 즉 나폴레옹 제국의 팽창주의속에서 낭만주의자들은, 개성주의와 사회유기체론을 합성하여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유의하면서도개인이 협동적 공통체속에서 문화적 지도라 대표하는 국가의 도움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가장잘 발휘할수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한편, 개성주의와 유기체적 사회관은 다같이, 자연상태에서 살던 인간이 공동체건설에 동의한다는 계약론에 대해 추상적 인간상을 거부한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계몽주의자들이 추상적개인(Man)을 보았던 곳에서 낭만주의자들은 구체적 인간들을 보았던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사회적 계약론의 전제를 인정할 경우, 동의라는 측면이 강조되면서 국가체제가 실제적 선택의문제로 등장할 위험성을 간파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국가각 계약의 산물일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했다. 개개의 사회 구성원이 임의로 사회체제를 선택할수 없음은 그가 속한 사회의 기성체제에 순응하며 살아야함과 더나아가 기성체제를 자의적으로 변경시킬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자들의 관점에서는 계몽사상의 이론을 실현시키려는 혁명가들의 과욕이 프랑스를 혼란과 악으로 몰고갔다고 보여졌다.
이들이 전통과의 단절이나 급진적 개혁을 비난하며 내세운 또하나의 명분은, 유기체적 사회관의 중요한 측면인, 사회 각 부분들의 상호 의존성 내지는 상호 관련성이었다. 즉, 사회의 관습, 믿음, 제도등은 유기적으로 얽히고 짜여있어서 한 부분에서의 변화와 개조는 전체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복합적 관계를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산업사회에서 유기적인 유대가 소멸되어 가는 것을 개탄하면서 개인과 집단사이의 완벽한 조화로의복귀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각자의 대립적 이해관계는 합리적 법 체계에 의해서만 화해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개인은 타인의타고난 적으로 규정되며 개개의 자유는 각각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만 존재할수 있다. 반면에 낭만주의에 따르면 타인과 교류하는 자연스러운 공동체에 사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운명이므로 각 개인은 자신을 전체와 동일시 했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러한 비판적 산업사회관을 수용한바 있지만 낭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앞서 근대 산업사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비판양식을 후자에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낭만주의자들은 또한 봉사와 보호의 인간관계에 근거한 중세의 위계적 질서를 이상화하면서 근대상업주의나 한업주의의 파괴적 결과를 지적할수 있었으며 평등의 명분아래 자행되는 착취와 지배의 새로운 양식을 폭로할수 있었다. 이런 중세예찬은 계몽주의에 의해서 중세가 암흑시대로 매도된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통합적 기능에 대한 낭만주의자들의 강한 집념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중세의 통합성을 파괴한 종교개혁을 비난하고 계몽주의나 프랑스 혁명을 야기한 점진적 세속화에 큰 우려를 가진채 산업사회의 문제점으로 가정의 결속력약화를 지적했다. 한편, 사회적 통합에 대해 낭만주의자들은 국가라는 개념을 민족과 결합시킴으로써 법과정부라는 제도적 틀 너머로 정치적 논의의 초점을 확대시켰으며 공통된 언어, 종교, 민속예술, 관숩 등에 존재하는 사회적 결 속의 비합리적이고 다중적인 유대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국가내의 외감을 갖는 집단을 자극하여 역설적으로 통합을 저해하는 정치적 운동의 추진요인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렇게 문화를 강조하는 낭만주의의 민족관념은 후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팽창주의의 추구와는 별 관계없는 것으로, 역사적 지리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언어에 대한 비교연구에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이렇게 낭만주의의 개성주의나 유기체적 사회관은 중세예찬과 아울러 보수주의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사회주의, 역사주의나 각종 학술, 문예?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3 역사관
전술한 개성주의와 유기체적 사회관에서 알수 있듯이 전통을 존중하고 사회적 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려는 낭만주의자들의 특성은 계몽주의자들의이성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되는 비역사적 추론에 대한 반발이었다. 계몽주의에서는 이성의 이름으로 역사에 대한 경멸과 거부가 선언되어 점진적 지속적 역사발전은 이성인식에 부정적 요소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에는 또한 역사저작이 인기있었는데, 이는 역사를 개혁의 필요성을 납득시킬만한 여러 예시의 보고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류로 점철된 역사는 역설적으로 인간 경험의 위대한 교사였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자기 시대에 대한 낙관과 긍정, 그리고 진보에의 신념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이러한 입장을 과거를 묻어버린 진보관 또는 몰역사적 자세로 보아 국가, 사회, 법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려 했다. 과거는 현재속에 살아간다는 것, 문화전통이란 지속적인 것으로 그에 대한 개개인의 주관적 태도와 무관하게 개개인에게 각인된다는 것, 과거의 유산이란 필연적으로 현재를 규정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