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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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중섭을 위하여
목 차
1. 仲燮 - 불꽃같은 남자
1.1 이중섭의 생애
1.2 이중섭과 소재
(1) 소
(2) 복숭아
1.3 중섭에게
2. 이중섭과 사람들
2.1 백석과 이중섭
2.2 구상과 이중섭
2.3 이중섭과 아내
2.4 이중섭과 나
3. 혼자로 돌아가다 - 이중섭의 이별
3.1 첫 아들의 죽음 그리고 군동화의 탄생
3.2 이중섭의 제주도 시대
3.3 혼자로 돌아간 이중섭
3.4 중섭이에게
4. 꺼져가는 불꽃 - 이중섭의 마지막 모습
5. 이중섭,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다
5.1 우리는 이중섭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5.2 하순희, 를 보고 전하는 위로
5.3 신달자, 이중섭에게 편지를 쓰다.
5.4 나는 이중섭을 어떻게 위로할까
1. 仲燮 - 불꽃같은 남자
1.1 이중섭의 생애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부농인 아버지 이희주와 어머니 안악 이씨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된 해에 이중섭은 아버지를 여의었다.
여덟 살 무렵 이중섭 가족은 평양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이중섭은 일본 유수의 공모전에서 특선한 경험이 있는 김관호와 화가이며 문필가인 김찬영의 집에서 접한 그림들, 미술도구, 서적 등 그리고 평양 일대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 시대의 벽화를 통하여 미술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1931년 이중섭은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여 미술교사인 임용련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키우게 된다. 그로부터 당시의 보편적인 교육과 달리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압박민족으로서의 자주정신과 창의를 중요시하는 가르침을 받은 이중섭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1935년 이중섭은 일본에 가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술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가 주최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당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활달함과 민족적인 특색을 발휘한 것으로 호평 받았다. 1941년에는 일본에서 유학하던 젊은 유화가들인 이쾌대, 진환, 최재덕 등과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회원전 이외에도 회원들의 개인전을 단체 명의로 개최하는 특이한 운영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1944년까지 각종 전람회를 가지면서 민족적인 화풍을 수립하고자 힘썼다. 이때 이중섭은 자신의 그림에 알파벳이나 일본어 대신 한글로 이름을 적어 자기됨을 유지했다.
1945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1946년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로 잠시 봉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으로 자유를 찾아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이후 가족과 헤어져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40세의 이른 나이로 죽기까지 이중섭은 어린이의 모습을 통해 천진한 인간성을 예찬하고, 소를 통해 민족과 개인감정을, 또 싸우거나 만나려고 애쓰는 닭이나 까마귀를 통해서는 분단과 동족상잔을 치른 민족의 통합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유화와 연필화에는 물론, 은박지 그림에서도 이런 미감을 실현했는데 특히, 상감기법에서 유래한 것 같은 독특한 미감의 은박지 그림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뉴욕의 모던아트뮤지엄에 소장됨으로써 세계적으로도 창의롭고 인상적인 그림을 창조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1.2 이중섭과 소재
(1) 소
중섭은 소를 좋아했다. 송도원 부근의 농부들이 날마다 나타나서 하루해가 저물도록 소를 보고 있던 중섭을 처음에는 소 도둑으로 알고 고발한 일화와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며 쫓겨날 뻔한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소에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중섭에게 소는 동물 이상의 가치를 지녔고, 존경하는 대상이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일찍 여윈 중섭은 심리적으로 아버지를 대신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런 그에게 소는 아버지의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가 그린 소 그림을 보면 나약하거나 힘없는 대상이 아니다. 매우 강렬하고 역동적이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데, 이는 화자가 소라는 존재에 대해 의지를 투영하고 강인하게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만족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소는 중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가 정릉 하숙방 벽에 붙여 놓았다는 ‘소의 말’은 자신의 독백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6. 참고문헌
- 단행본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 화가 이중섭의 생각』, 김광림, 도서출판 다시, 2006.
『이중섭을 훔치다』, 김영진, 미다스북스, 2001.
『문학, 그림을 품다』, 여지선, 푸른사상, 2010.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전인권, 문학과지성사, 2000.
『이중섭 평전 : 흰 소의 화가, 그 절망과 순수의 자화상』, 최석태, 돌베개, 2000.
『별 하나를 기다리며』, 하순희, 동학시인선, 1998.
- 소논문
「이중섭의 회화 공간과 김춘수의 시 공간 비교 - 서귀포를 중심으로」, 이세경, 『국제한인 문학연구』 제 8호 , 2011.
- 신문기사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기하추상의 대부’ 한묵 회고전-」, 조태 성, 『서울신문』, 2012-08-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