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계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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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계승론
1.장대년은 누구인가? 이철승,「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한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 장다이녠」,『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 p669
장대년은 1909년 중국 허베이(河北)성 센 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롄은 학자였고, 큰형인 장선푸는 서양 철학에 밝았다. 유년 시절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시골에 살면서 『논어』, 『맹자』, 『대학』 등 중국 고전을 두루 읽었다. 1920년 4월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그는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이사를 가고 그 해 겨울 베이징 사범 대학 부속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노자(老子)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1928년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처음으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베이징 사범 대학에 다닐 때 그는 중국의 전통 철학과 서양 철학에 고르게 관심을 쏟았다. 이철승,「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한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 장다이녠」,『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 p670
서양의 신실재론, 실용주의, 생명철학, 진화론, 신헤겔주의 등을 비교 연구하면서 그는 특히 변증법적 유물론을 실제에 부합하는 가장 가치 있는 철학으로 여겼다. 1933년 베이징 사범 대학을 졸업한 그는 큰형인 장선푸의 소개로 철학계의 선배인 펑유란, 진웨린 등과 교류하게 되고, 펑유란과 진웨린의 추천을 받아 칭화 대학교 철학과 조교가 된다. 1946년 여름 칭화 대학 철학과의 부교수가 되었고, 1951년에는 교수로 승격한다. 1952년 정부 정책에 의해 청화 대학의 문학원, 법학원, 이학원이 베이징 대학에 편입되고 그 역시 베이징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된다. 이 당시 베이징 대학 철학과의 학과장은 진웨린이었고 펑유란은 중국 철학 연구실의 책임자였는데,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중국 철학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1957년 ‘반우파’ 투쟁이 일어나면서 장대년은 유산계급 우파로 몰리면서 가르칠 권리를 박탈당했으나 1962년 우파라는 오명을 씻고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했다. 1966년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자 그는 비판을 받고 재산을 몰수당한 후 1년 동안 장시(江西) 성 리위(魚) 주로 하방 되었으나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문화 대혁명이 종결되어 1979년 베이징 대학은 장대년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 이철승,「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한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 장다이녠」,『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 p671
1966년 허베이 인민출판사에서 그의 글들을 모아 총 여덟 권으로 된 『장다이녠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젊은 나이인 20~30 대에 이미 방법론, 우주론, 지식론, 인생론 등에서 자신의 관점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유심론과 유명론과 유리론에 대해 비판적인 관념을 유지했으며, 변증법적 유물론과 형식 논리학 및 유물론과 중국 전통 철학을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서양 철학을 배타적으로 여기는 ‘동방문화파’와 그 정반대 선에 있는 ‘전반서화(全般西化)파’ 양쪽을 비판하면서, 서양 문화의 우수한 내용과 동양 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창조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하였다.
이철승,「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한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 장다이녠」,『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 p672
5) 이철승,「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한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 장다이녠」,『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 p673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글들을 발표하며 철학사의 범위, 철학의 기본 문제와 기본적인 분파, 철학의 계급 분석 방법과 이론 분석 방법, 철학 유산의 비판적 계승 등의 문제와 중국 전통 철학에 나타난 각 개념의 의미와 범주 등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중국 철학 가운데 “인간이 사물보다 귀하다.”는 이론을 수용하여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이 차지한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유산 계급에서 말하는 소수의 사용자에 인간의 의미를 가둬 놓는 것은 거부했다. 그에게 인간이라는 의미는 불특정 다수의 모든 인간을 추상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무산 계급의 사람들을 의미했다. 또한 그는 「가치의 층차를 논한」과 「가치와 가치관을 논함」이라는 글에서 가치에는 서로 다른 층차가 있고, 그중에서도 내재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개인과 사회 및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참(眞), 착함(善), 아름다움(美)이라는 최고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철승,「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한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 장다이녠」,『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 p674∼675
이처럼 격동의 역사 속에서 철학 연구를 통해 시대문제를 해결하고자한 그의 주체적 삶과 독창적 이론들은 중국의 철학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 철학자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