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사회화가 없이 사상이 성립할 수 있을까 - 일본 실학에 비추어 본 조선 실학의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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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식의 사회화가 없이 사상이 성립할 수 있을까
- 일본 실학에 비추어 본 조선 실학의 과학기술 -
오늘의 주제는, “실학의 현재성을 묻는다” - ‘과학기술분야’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말씀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실학의 현재성’이라고 할 때, 저는 동아시아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 실학은 동아시아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소 동어반복적 의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학이 현재 지니는 의미와 성격 또한 동아시아의 세계화라는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조선의 실학을 오로지 한국사에서 위대한 사상의 젖줄기라는 기존의 역사적 해석을 넘어서기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서구 중심주의적 용어인 ‘과학기술’을 지양하고, 실학을 인식하는 틀로서의 ‘과학기술’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선 다소 설명이 필요합니다. 서구 사회에서 조차도 기술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영어권의 경우 1615년이었고, ’과학혁명‘이란 개념을 사용한 것은 1939년이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붙여서 ’과학기술‘로 사용한 것은 20세기 중반이 지나고서였습니다. ‘과학기술분야’라는 용어가 미리 전제하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이 실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한 분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실학의 한 분야로서의 ‘과학기술’이 아니라, 실학의 준거 틀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자리가 실학 축전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자리인 만큼 저의 발표도 학술적인 논리에 바탕을 두면서도 몇 가지 쟁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특히, 저는 조선 실학을 당시의 일본 실학인 蘭學과 자주 비교하려고 하는데, 이는 당시의 일본이 동아시아의 세계화 과정에서 제일 빠른 대응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1. ‘동아시아의 세계화’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중국과 유럽이 직접적이고도 대규모로 직접 맞대면을 하게 된 것은 칭기즈칸(成吉思汗, 1155?~1227)에 의해 성립된 몽골 제국을 통해서이다. 흑해(Black Sea)가 양쪽을 연결하는 무역의 통로가 되면서, 중국, 이슬람, 유럽 사이의 문물 교류는 급속히 증가하였다. 이런 흐름을 타고, 중국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대규모 이주를 하였고, 이슬람이 중국으로 유입될 수 있었다. Gernet, J. Le Monde Chinois (1972), A History of Chinese Civilization, 2nd ed. translated by J.R. Foster and Charles Hartma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376 & p.380.
하지만, 중앙 유라시아 나라들에 대한 몽골의 지배는, 14세기에 "흑사병에 의한 세계화" 프랑스 아날학파 역사학자인 르 롸 라뒤리는 “질병에 의한 지구의 통합(unification)”이라고 표현하였다. Le Roy Ladurie, E. The Mind and Method of the Historian, translated by Sian Reynolds and Ben Reynolds.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 "A Concept: The Unification of the Globe by Disease (Fourteenth to Seventeenth Centuries), pp.28-83.
라는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흑사병은 무역 통로를 통해 중국과 유럽 전역에 크게 창궐하면서 두 지역의 인구는 크게 감소하였다.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중국과 유럽이 단일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연결된 것인데, 여기서 주목을 요하는 점은, 이 보여주듯이, 흑사병의 창궐이 무역의 통로를 통해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Abu-Lughod, J. L, Before European Hegemony :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p.172-3. 그의 논의는 윌리엄 맥닐의 다음 책에 근거하고 있다. McNeill, W. H, Plagues and Peoples, Garden City, N.Y. : Anchor Press, 1976, “The Impact of the Mongol Empire on Shifting Disease Balances, 1200-1500", pp.132-75을 볼 것.
다시 말해서, 14세기를 거치면서, 전염병의 창궐과 이에 대한 인간의 대응 방식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 및 사회와의 유기적 연관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왔음을 의미한다.
흑사병이 가져다 준 손실은 중국보다도 유럽이 훨씬 막대했다. 전체 인구의 약 1/4이 감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등장으로 기존의 무역로를 통한 경제적 수익이 크게 감소된 유럽 오스만 제국의 유럽에 대한 무역 차단에 대해선, Frank, A.G. 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1998), 『리오리엔트』이산, 이희재 옮김, 이산, 2003, pp.161-2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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