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고 감상문 및 박지원의 사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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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고 감상문 및 박지원의 사상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배경

Ⅱ. 교재에 실린 『열하일기』 내용

Ⅲ. 『열하일기』
○ 『열하일기』에 대한 기존 연구 성과들
○ 연행록(燕行錄)으로서 특색(표제와 관련하여...)
○ 『열하일기』의 서지학(書誌學)적 문제
○ 『열하일기』에 나타난 연암의 대청인식(對淸認識)과 북학론(北學論)
○ 『열하일기』의 문예적 특징
○ 『열하일기』가 지닌 문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Ⅰ.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배경
연암 박지원(朴趾源, 영조13-순조5, 1737-1805)은 18세기말인 조선 영,정조 시대의 소설가, 문신, 학자로서 자는 중미(仲美)이며 연암(燕巖)은 그의 호이다. 서울태생으로 한성부 판관과 면천 군수등을 거쳐 영양 부사를 지낸 인물이다. 그리고 당시의 우물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학자들에게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사상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아버지는 사유(師愈), 조부는 지돈녕부사 필균(弼均)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인데, 이름있는 가문에 태어났지만, 가풍이 청렴하고 검소하여 생활은 결코 부유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려서 조실부모 하였다고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이후 밝혀진 연암의 아들에 의해 쓰여진 ‘과정록’에 의하면 23세에 모친타계, 31세에 부친타계로 나온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에 신경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연암의 아버지가 전혀 벼슬을 못한 것으로 보아 자식의 학문에도 무관심하였던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형과 형수를 더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16세에 조부가 타계하자 생활이 더욱 곤궁해졌고 서둘러 결혼을 하였다. 혼인 이후부터 글 공부에 주력하였으나 20세 전후에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였고, 언제나 비판의식을 갖고, 재능은 있으나 불우하게 살아가는 부류들과 교류하였다. 그러다가 과거에 응시, 실패하였고 결국 35세에 과거 포기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처자식을 처가로 보내고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등의 인물들과 늘 학문적 교류를 가지며 왕래했다. 당시 그를 중심으로 한 '연암 그룹'이 형성되어 많은 신진기예의 청년 인재들이 그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고, 새로운 문풍, 학풍을 이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었다. 문학에서는 당시 이덕무·유득공·이서구·박제가가 4대시가(四大詩家)로 일컬어졌는데 모두 박지원의 제자들이었으며,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얼 출신이었다. 그러나 당시 홍국영이 세도를 잡던 시기라 벽파인 그의 생활이 어렵게 되어 결국 황해도 금천 연암골짜기로 은거하여 농사와 목축에 대한 정리를 하게 된다. 그의 아호가 연암으로 불려진 것도 이에 연유한다.년후 홍국영이 물러나자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있다가 그 해(1780- 정조4년)에 삼종형 박명원의 권유로 청나라 사절로 북경에 갈 때 최말단의 신분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그리고 압록강을 거쳐 북경, 열하를 여행하여 다녀온 후 열하일기라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명작 기행문을 쓰게 된다. 그 후 50세에 선공감 감역 등 말직에 머물다가 의금부도사, 한성부 판관, 안의현감, 면천군수등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1805년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상으로 정리 하자면, 연암의 생애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 1기는 과거를 포기할 때까지의 문장 수학기로 정신적 고통과 좌절을 겪었던 시기이며, 제2기는 그 좌절과 갈등을 극복하고 조용히 속세에서 물러나 실학사상을 확립하고 열하여행을 다녀온 시기, 제 3기는 관직에 진출하여 과거의 반항적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천에 옮겨보려했던 시기로 설명할 수 있다.그가 안의현감 생활을 하면서 쓴 열하일기와 면천군수 시절에 남긴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등은 연암의 현실 개혁사상을 이론적으로 펼쳐 보인 대표적인 저서에 속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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