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상] 문학텍스트와 영상문화의 상호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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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문학과 영상] 문학텍스트와 영상문화의 상호연관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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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학과 영상] 문학텍스트와 영상문화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문학텍스트
2. 다의적 텍스트
3. 미적 텍스트
4. 사회, 역사적 텍스트
5. 영상 문화로서의 영화
6. 영상문화의 수용
7. 문학과 영화의 만남
1) 해리포터
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8. 문학과 영상의 상관성
9. 결론

본문내용
문학 텍스트는 인간의 의미만큼 불확정적이다. 그것은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어떤 지향이다. 텍스트는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그 지향 속에 있다. 본고에서는 문학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하는 요소들 가운데서 변화하는 우연적인 측면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텍스트를 수평/수직적으로 가로지르는 의미작용의 접점들이 만들어 내는 의미형성의 장소를 이론적으로 고찰해 보는 데에 있다.

2. 다의적 텍스트

문학 텍스트는 어떤 일관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통일된 유기체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관된 정체성이 부정되고 기표가 자의적으로 지시하는 언어기호의 의미 구성체에 불과한가 이러한 물음은 현대 언어학과 분석철학 및 언어철학 등의 연구 성과에 자극되어 현대 문학이론과 문학 연구의 장에서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전통적인 문학 연구에서 텍스트는 언제나 본질적인 정체성을 지닌 유기체로 간주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서부터 낭만주의와 리얼리즘 문학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형식주의와 분석 비평을 거쳐 현대의 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모든 문학이론들이 전제로 하는 텍스트는 언제나 유기적인 구조를 지닌 통일체로서 어떤 유일한 의미―개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세계와 인간의 삶은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의 미적 의미화 실천인 문학 텍스트는 그러한 갈등과 모순을 총체적인 의미와 체계로 통일시키고 미적 구조 안으로 조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다. 그럴 때 텍스트는 자족적인 것이 되고, 작품은 작가의 완전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것은 유일하고 고정된 의미를 지니게 되며, 이른바 정전(正典)으로 문학 연구의 제도 안에서 지배적인 권위를 지니게 된다.
한편 이와는 달리, 그러한 전통적인 텍스트관을 부정하면서 텍스트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려는 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비판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철학적, 언어학적 성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논리적이고 근본적이다. 콰인(Quine)과 로티(Rorty), 데리다(Derrida), 그리고 소쉬르(Saussure)와 워프(Whorf) 등 많은 논자들에 의해서 텍스트의 근본조건을 이루는 언어와 지시 대상, 문장과 의미, 혹은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자연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콰인의「인식이 문장의 문제」라는 주장, 로티의「반기저주의」, 데리다의「논리중심주의 비판」그리고 소쉬르와 워프의「기표의 자의성」과「개념체계의 언어 의존성」등에 대한 주장은 언어가 표상하는 의미가 객관적 진리치로서의 의미, 즉 개념적으로 고정되고 단일화된 의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텍스트가 언어로 쓰여지는 이상, 언어 즉 텍스트가 표상한다고 믿는 사물현상에 대한 의미는 객관적인 진리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언어체계의 거울에 비친 허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사물현상 즉 존재의 실재를 그것 차체로 인식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참다운 앎이나 객관적 진리가 사실은 언어적 진술로 만들어지고 구성된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주의자들에 의하면 언어 이전에 사물현상과 존재의 실재를 우리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각과 관찰, 의식과 인식은 사물현상과 존재, 즉 대상을 언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는 대상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속한 언어체계 혹은 개념체계에 상응할 뿐이다. 다른 언어체계 즉 다른 개념체계로 보면―바꾸어 말해 다른 언어판, 다른 페러다임으로 보면―동일한 대상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소산인 텍스트―과학, 철학, 역사, 문학텍스트―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만들어지고 구성된 세계,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허구일 수밖에 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있는 것은 기호 뿐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주체와는 관계없이 대상의 객관적인 실재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객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