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문] 경주와 경주일대 답사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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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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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경주와 남산
Ⅱ. 삼릉골마애선각육존불상
Ⅲ. 칠불암
Ⅳ. 석굴암
Ⅴ. 기림사
Ⅵ. 신문왕릉
Ⅶ. 불국사
Ⅷ. 천마총
Ⅸ. 경주 첨성대 (국보 제31호)
Ⅹ. 안압지
Ⅺ. 황룡사지(皇龍寺址)
Ⅻ. 용장사(茸長寺)
본문내용
경주 남산은 옛 신라의 도읍이던 서라벌 남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한다. 서쪽에는 선도산, 벽도산, 옥녀봉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독산, 금강산, 금학산 등이 나란히 솟아 있다. 동쪽으로는 낭산, 명활산이 솟아 있으며 멀리 토함산 연봉이 겹으로 둘러막고 있어 서라벌은 천연 성벽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터전이다.
경주의 옛 이름 서라벌은 ㅣ벌이라고도 불렸다. 오랜 옛날 ㅣ벌에는 가운데로 맑은 시내가 유유히 흘러가는 푸른 벌판이 있었을 뿐 산은 없었다. 어느 날 이 벌판으로 흘러가는 시냇가에서 한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때 두 신이 ㅣ벌로 찾아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이었고, 또 한 신은 둥근 얼굴에 샛별 같이 눈동자가 반짝이는 아주 부드러운 여신이었다. 신은 평화롭고 기름진 ㅣ벌의 경치를 둘러보면서 ꡒ야! 우리가 살 곳은 여기로구나! ꡓ 하고 감탄하여 외쳤다. 이때 빨래하던 처녀가 신들이 외치는 우레 같은 큰 소리에 놀라 ꡒ산 봐라! ꡓ 하고 힘을 다해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ꡒ산과 같은 사람봐라! ꡓ 해야 할 말을 너무 급하여 ꡒ산 봐라! ꡓ 하고 외쳤던 것이다. 발 아래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두 신은 발을 멈추었는데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신은 남산 서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望山)이 되고, 남신은 검은 바위와 붉은 흙빛으로 울퉁불퉁한 산맥을 모아 장엄하게 자리한 남산(南山)이 된 것이라 전한다.
경주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높이 468m되는 금오봉이고, 그 남쪽에 높이 494m되는 고위봉이 솟아 있다. 이 두 봉우리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뻗어 내린 산줄기들을 모두 합쳐 경주 남산이라 부른다. 정상의 높이는 468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지형은 남복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누어진다. 동남산 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에, 서남산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유적의 숫자로 보면 서남산 쪽이 동남산보다 월등히 많다.
이 산에는 아득한 석기시대 유적도 여러 곳에 있고, 신라 건국 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과 신라 국방의 심장부였던 남산성(南山城)도 있다. 성터에는 망대자리와 무기창고터며 식량창고터들의 남아 있는데, 이러한 유적에서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위대한 신라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또 신라의 종말을 고하게 된 슬픈 포석정도 이 산기슭에 있다.
528년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후 남산은 천상의 부처님이 하강하여 머무는 산으로 신앙되어 많은 절이 지어지고 부처가 새겨지고 탑이 서게 되었다. 골짜기마다 자리잡은 1백 10여 개소의 절터에는 돌축대며 주춧돌이 남아 있고, 산봉우리나 바위 더미에 서 있던 석탑의 수도 61기나 된다. 입체로 조성하여 모셔놓은 돌부처도 있고 절벽 바위에 선각(線刻)이나 돋을새김한 마애불상도 많다. 지금까지 발견된 불상의 수가 78체인데, 큰 것은 높이 10m 가량 되고 작은 것은 1m 정도의 것도 있다. 신라 사람들은 남산의 바위를 쪼아 부처님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남산의 바위 속에 숨어 있는 부처님을 찾아 드러낸 것이다. 부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여 경주 남산의 산과 바위를 온통 부처님으로 작업한 것이다.
불교유적 외에도 곳곳에 왕릉이 있고, 바위에 얽힌 전설들이 있어 남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다정한 정서를 심어준다. 또 이산은 계곡마다 그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온종일 권태롭지 않으니 이런 점도 남산의 특색이라 하겠다.
남산. 이 곳은 온 산 넓게 펴진 자락마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는 흥망성쇠의 유서 깊은 역사와 간절한 전설이 서려있고, 때로는 젊은이들의 심신 수련장이였으며, 나라를 지키는 간성이 되기도 하고, 백성들의 영험 있는 신앙지이며, 불교의 성지였다. 그리고 지금은 신라 천년 역사의 증인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문화재와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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