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 조선시대 성리학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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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여성] 조선시대 성리학과 여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릿말
2. 남존여비와 삼종의도
3. 무학(無學)과 유순의 미덕
4. 임윤지당
1)생애
2)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
3) 남녀평등의 철학적 근거 제시
4) 여성교육의 중요성 제기
5. 강정일당
1) 생애
2) 학문과 유교 경전 연구
3)심성수양론(心性修養論)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릿말

조선시대는 남성(男性)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주의가 뿌리 깊은 사회였다. 조선왕조 건국이후 여성의 생활여건은 전대에 비해 크게 제약을 받으면서 여성에 대한 가정 내에서의 제한과 함께 사회와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까지 제한되었다. 사실 여성에게 있어 공식적인 교육의 부재 현상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전근대사회(前近代社會)에서도 일반적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정치적 안정을 꾀하기 위한 일환으로 여성들의 제반활동을 제한해 왔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당시로서는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조차 『성호사설(星湖僿設)』에서 “독서와 강의는 장부의 일이니 부인들은 끼니와 의복 공양과 제사와 손님 접 대함에 이바지할 뿐이지 어느 겨를에 책을 대하여 외고 암송할 겨를이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또한 이덕무(李德蕪, 1741~1793)는 “부인으로서 바느질하고 길쌈하고 음식 마련할 줄 모르면 장부로서 시서(詩書)와 육례(六藝)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받아온 학문활동의 금기시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18세기의 조선에서는 성리학을 내재화한 여성지식인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신사임당(1504~1551)․황진이․허난설헌(1563~1587) 등으로 대표되는 16세기의 여성들이 주로 시나 그림 등의 예술로 세상에 드러난 데 비해, 18세기 이후의 여성들은 성리학적 이론이나 생활의 실용지식에 대한 저술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이러한 시대적 차이는 사상사적인 전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조선 후기는 내외적인 여러 사회조건이 변화함과 함께 지식의 습득이 이전에 비해 대중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출판문화의 양적인 확대와 향교나 서당의 증가가 지식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했는데, 극히 일부에 국한된 경우이지만 지배 지식에의 여성 참여는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남전여비와 삼종의도 그리고 무학과 유순의 의미,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여성 성리학자인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과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1. 이배용외, 1999,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청년사.
2. 정성현, 1999, 《우리여성의 역사》, 청년사
3. 이영춘, 2002, 《강정일당》, 가람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