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와 `조선사연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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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채호와 `조선사연구초`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신채호의 생애
3. 『조선사연구초』의 서술배경
4. 『조선사연구초』의 내용과 특징
1)「옛 사서에 나오는 이두문 명사 해석법」
2)「삼국사기 중 동·서 두 글자 상호나 고증」
3)「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4)「평양패수고」
5)「전·후삼한고」
6)「조선 역사상 일천년 이래 가장 큰 사건」
5. 신채호와 『조선사연구초』의 사서적 의미
1) 일제시기 지식인의 역사인식
2) 박은식과 신채호 역사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
3) 신채호의 역사인식이 가지는 의미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신채호는 1880년대 태어나서 1936년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역사가로 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민족주의사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근대적 역사연구를 받아들였다.
신채호에 대한 연구는 신채호의 역사인식과 그러한 역사인식이 형성된 배경,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연구가 이루어졌고, 또 민족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로서 신채호가 어떤 노선을 걸었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어왔다.
1970년대에는 신일철의 나 이만열의 와 같은 논문들이 나왔다. 이 논문에서는 신채호가 지닌 역사사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는 남한에서 민족주의사학이 북한에서 유일사상에 의한 주체사관이 형성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남한의 민족주의사학은 식민사학에 대항하는 것은 모두 민족주의로 포장 하였다. 박인호,「현대 역사관의 조류」,『한국사학사대요』, 2001, p269, p276

1980년대는 이만열의 이나 김정배의 와 같이 신채호의 역사인식에 대한 배경을 알고자하는 연구와 서봉석의 와 김병란의 , 이만열의 와 같이 신채호의 역사관 자체에 초점을 맞춘 연구도 진행되었다.
1990년대에는 임규석의 과 같이 신채호의 시대성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이윤화의 과 같이 비교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에도 이성근의 와 같이 신채호의 역사관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호룡의 와 같이 민족주의사학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무정부주의자의 모습도 연구하였고, 배용일의 와 같이 민족주의사학자 간의 비교연구도 이루어졌다.
이상에서 신채호의 연구동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채호와 그의 역사관에 대한 연구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갔다. 앞으로 신채호의 역사인식이 현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신채호가 걸은 노선인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연구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신채호의 생애

일반 역사를 연구하거나 인물사를 연구함에 한 사건 혹은 인물의 시대적 ․ 족적 배경을 연구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이다. 특히 지성사 연구에는 이 점이 거의 불가결의 요소처럼 되어 있다. 이만열,「단재사학의 배경」,『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여기에서는 신채호의 저술 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활동을 표로 정리하였다. 신채호 지음, 박인호 옮김, 「단재 신채호의 발자취」,『단재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동재, 2003,


연도
나이
신채호의 생애
1880년
1
12월 8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신광식과 밀양박씨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고령, 초명은 채호, 아호는 단생, 호는 단재, 필명은 무애생, 열혈생, 금협산인, 연시몽인 등
1895년
16
풍양 조씨와 결혼
1897년
18
천원군 목천에 있던 신기선과 교류하며 많은 서적 탐독
1898년
19
신기선의 천거로 성균관 입학,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애국계몽운동 전개
1905년
26
장지연의 초청으로 『황성신문』논설위원에 위촉
1906년
27
『황성신문』폐간 후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주필이 됨
1907년
28
9월, 양기탁, 이동녕, 이회영, 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
1908년
29
5~8월 「이순신전」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 5월 30일 『을지문덕』출간, 6~10월, 국문판 「리순신젼」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 8~12월 「독사신론」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
1909년
30
「최도통전」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
1920년
41
박자혜와 결혼
1923년
42
상하이에서 1월 3일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임정창조파로 참여, 1월 의열단의 요청에 따라 「조선혁명선언」 집필, 9월 석등암에서 거주하면서 고대사 연구함
1924년
45
역사논설인 「고사상 이두문 명사해석법」,「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등을 10월~1925.3월 『동아일보』에 연재, 3월 승려가 되어 관음사에 들어갔다 하산
1928년
49
무정부주의자 북경회의에 참여했으며 선언문을 작성, 무정부주의자 동방연맹 잡지 발간과 폭탄제조소 자금 마련을 위해 일본을 거쳐 대만에 상륙하기 직전 5월8일 일본 경찰에게 잡혀 대련으로 이송
1929년
50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역사논설을 모아 『조선사연구초』의 표제로 6월 15일 출간, 10년형을 언도받고 여순 감옥으로 이감
1930년
51
신백우, 안재홍등의 주선으로 『조선일보』에 「조선사」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
1936년
57
2월 18일 여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렀으며 21일 57세의 나이로 사망, 22일 여순 감옥에서 화장한 후 유골을 고향인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가져와 상당산 기슭에 암장


3. 『조선사연구초』의 서술배경

(1) 제1기(1910년 이전): 제1기 역사집필은 한학적 소양과 성균관에서 수학 및 당시 개화자강론자들 사이에 일정하게 유행하던 천택물경의 사회진화론 사상이 기반. 거기에 1905년의 국치 등 기울어져가는 나라에 대한 울분과 애국계몽지사적 용기 같은 것이 혼합.
특징: ①종래의 구사와 당시 국사교과서 등에 대한 비판 ②김부식을 비롯한 유교적 사관에 대한 비판 ③자강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영웅 중심 사관 ④한국의 역사를 부여족의 역사로 보고 단군에서 부여로 계승되는 고대사의 체계가 나타남
⇒ 전체적으로 초보적이며 철저하지 못하였지만 역사관의 기초를 형성.
대표저술:『독사신론』,『역사와 애국심과의 관계』등 여러 역사평론.
(2) 제2기(1910년~1924,5년): 한말 쓰러져가는 조국의 현실과 대결하면서 언론 ․ 문필 활동으로 애국계몽 ․ 자강독립운동을 벌이던 단재는 1910년 4월경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 ․ 북경 ․ 만주로 전전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한편 역사연구에 박차를 가함.
특징: ①주자학 및 유교적 사관에 대한 한계를 뚜렷하게 지적, 이를 극복하는 반주자학적 성격 ②제1기에 뚜렷했던 영웅사관이 극복되고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려는 민중중심 사관이 나타남. ③고대사의 체계 인식이 더욱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심화되고 체계화 되었으며 낭가사상이 주장되어 고대사의 무대가 확대 ․ 인식됨.
⇒ 신채호의 역사학이 완성된 시기이며 고대사 체계가 구체화 되고 낭가사상이 주장되었다.
대표저술:『조선사연구초』에 실린 논문들과『조선상고사』및『조선상고문화사』

(3) 제3기(1925년 이후): 신채호는 좀 더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방략의 하나로 1925년부터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1927년에는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하였다. 이 운동에 관련되어 그는 그 이듬해 1928년 5월에 체포되었고, 1936년 여순 감옥에서 복역 중 옥사했다.
⇒ 주로 아나키스트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그의 역사관계 논문과 저서들이 이때 거의 발표 되었다. 그러나 이때에 발표된 그의 역사 관련 저서 ․ 논문들은 1925년까지 저술된 것으로 추측되며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1921~1925년경에 쓰여 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박걸순, 「조선사연구초」, 『단재 신채호 전집 2』, 독립기념관, 2007
신채호 지음, 박인호 옮김, 『단재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동재, 2003
박인호, 『한국사학사대요』, 이회, 2001
신형식, 『韓國史學史』, 三英社, 1999
백동현, 「신채호와 ‘국(國)’의 재인식」, 『역사와 현실』, 1998
신용하, 「신채호의 생애와 사상과 독립운동」, 『사상』, 1991
홍성덕, 「일제강점기 한국사학의 역사인식」, 『역사, 사회, 철학』, 1990
이만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박인호, 『한국사학사대요』, 이화문화사
배용일, 『박은식과 신채호 사상의 비교 연구』, 경인문화사, 2002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