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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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커피의 역사, 우리나라의 수용경로
(1) 커피의 기원, 전파
(2) 우리나라의 수용경로
Ⅱ. 커피와 일제강점기(일제 강점기 시대)
(1)커피의 수용층
(2)다방과 카페
Ⅲ. 커피, 대중화 물결의 시작(해방 이후 - 1950년대)
(1) 커피 수용과 그로 인한 많은 다방의 생성
(2) 일상생활 속의 커피
Ⅳ. 커피, 대중속으로(1970년대 - 현재)
(1) 수용층
(2) 일상생활의 변화
Ⅴ. 커피의 역사기행, 그 여정을 마무리 지으며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커피의 역사, 우리나라의 수용경로

(1) 커피의 기원, 전파
커피의 원산지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아라비카종(coffee arabica)은 동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 로부스타종(coffee robusta)은 서아프리카의 콩고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춤추는 염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약 AD 500년경에, 에티오피아에 사는 칼디(Kaldi)라는 양치기 소년은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난 뒤 흥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열매를 직접 먹어본 칼디도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칼디는 이 사실을 마을에 있는 한 수도승에게 알렸고, 이를 신기하게 여긴 수도승은 열매를 가져다 동료 수도승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날 밤, 열매를 먹은 수도승들은 이 열매에 잠을 이겨내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소문은 금방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고, 그 뒤로 커피열매는 잠을 극복하게 해주는 신비의 열매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는 농부들이 자생하는 커피열매를 끓여서 죽이나 약으로 먹었다. 9세기 무렵 아라비아반도로 전해져 처음 재배되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시리아·터키에 전해졌다. 이곳에서는 커피열매를 끓여 그 물을 마시거나 열매의 즙을 발효해서 카와라는 알코올 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이 음료는 13세기 이전까지는 성직자만 마실 수 있었으나 그 이후부터 일반대중들에게도 보급되었다. 유럽에는 12세기 십자군전쟁 때 처음 들어왔으나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배척하였다. 그러나 밀무역으로 이탈리아에 들어온 뒤 교황으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음료로 공인받게 되었고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5세기에 이르러 수요가 늘자 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이를 독점하기 위하여 수출항구를 모카로 한정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반출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인도에서 밀반출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17세기 말에는 네덜란드가 인도에서 커피 묘목을 들여와 유럽에 전하였다. 그 뒤 유럽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커피를 대량 재배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커피의 어원
커피의 어원에 대한 주장이 몇 가지 있으나, 가장 신뢰가 가는 것은 '카파(kaffa)'이다.
카파(Kaffa)는 아랍어로 힘을 의미하는 말에로서, 에디오피아의 커피나무가 야생하는 곳의 지명이기도 하다. 이 말이 터키로 전파되며 Kahweh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선 Cafe, 이태리에서는 Caffe, 독일에서는 Kaffee, 네덜란드에서는 Koffie, 영국에서는 Coffee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히(コ-ヒ-), 러시아에서는 Kophe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선 Kava, 베트남에서는 Ca phe로 불리고 있다. 또 다른 커피의 어원은 시(詩)에서 와인을 일컫던 'Quahweh'라는 아라비아 말에서 나왔다는 것으로, 와인이 금지되어 있던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커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2) 우리나라의 수용경로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는 예멘의 양치기가 커피를 처음 발견한 때로부터 1000년쯤 지난 뒤의 일이며,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이웃 일본에 커피가 상륙한 지 170년쯤이 지난후의 일이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얘기로는 189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이른바 아관파천때에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고종과 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커피를 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맛을 들인 고종은 환궁 후에도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러시아를 통해 커피가 들어온 것과 함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경로도 중요한 한 갈래이다. 한일합방 이후로 이 땅에 몰려오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그들의 찻집양식인 깃사뗀 을 서울 명동 언저리인 진고개에다 옮겨놓고 선을 보이면서 커피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은 그로 인해 독살될 뻔하기도 했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서 쫓겨나고 또 러시아와의 통상에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들통나 흑산도 유배가 결정되자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김홍륙은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사인을 매수, 고종의 생일에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하려다 발각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Ⅱ. 커피와 일제강점기(일제 강점기 시대)

(1)커피의 수용층
-이 시기의 수용층 대부분은 인텔리 층이었으나 하나의 다방이 생겨남에따라 그 수용층이 조금씩 변화하였다-
1)수입 직후
1890년대 고종이 커피를 처음 마시며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왔다. 1902년 러시아 워벨 공사의 처형이 손탁이 세운 ‘손탁호텔’에 있는 다방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다방이 된다. 당시 커피는 서양문물과 분위기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왕의 기호품이 아닌 중앙의 관료, 서울의 양반, 지방의 양반으로 점차 수용층이 확대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2)일제 강점기 초(1910~1925)
일제강점 초기의 다방은 모두 일본인이 경영하였다. 따라서 다방을 이용하는 고객층도 일본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1923년 지금의 충무로 3가에 세워진 ‘후다미’라는 곳에는 동경에서 새로운 사상과 풍습을 배워서 돌아온 문학가나 화가, 그밖에 소수의 일본인 청년들이 손님의 전부였다.

3)일제 강점기 중,말기(1926~1940)
종로일대의 다방이 인기를 끌자 다방이 많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명동, 충무로, 종로일대에 생기기 시작하였으나 아직까지 일반 대중과의 거리는 존재하였다. 손님의 대부분은 높은 고위 관료층, 개화된 지식인들이었다.
1927년 한국인 최초의 다방이 생기면서 드디어 서구와 같이 우리나라의 예술인들의 삶 속에도 커피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도 신문기자, 학생 등 각 방면의 소위 인텔리들이 폭넓게 드나들었다.

(2)다방과 카페
1)다방
①손탁호텔
우리나라의 최초의 호텔 다방은 손탁이 세운‘호텔다방’이었다. 그 후 1914년 10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조선호텔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다방은 주로 호텔 문화와 함께 유입된 것 이었다. 그리하여 실내도 대부분 양풍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②후다미
1923년경 지금의 충무로에 ‘후다미’라는 곳이 근대적 다방의 원조이다. 일본인이 경영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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