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역사] 학생자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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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교의 역사] 학생자원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학생자원운동의 발발
기독학생 수련회 개최
학생자원운동의 성립
Northfield 세계 대학생 사경회
제2회 Northfield 대학생 사경회(1887)
제3회 Northfield 대학생 사경회(1888)
학생자원자운동(SVM)
SVM의 다섯 가지 목표는


학생자원운동의 결과
본문내용
학생자원운동의 발발

SVM의 발단은 골든 체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준비되어졌다. 그 첫 번째 고리는 미국의 세계선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초더미 기도회'이다. 이는 1806년 윌리엄즈 대학에서 사무엘 밀즈(Samuel J. Mills)가 핵심이 되어 일어난 복음주의 각성과 기도운동을 일컫는 것이다. 그해 8월 밀즈와 그의 친구 네 명이 습관을 좇아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건초더미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서 폭풍우가 그칠 때까지 그들은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밀즈가 다른 학생들에게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자기와 함께 협력하자고 도전하였다. 그는 '우리가 원한다면 할 수 있다'(We can do this if we will)라는 말로 그들을 격려했는데, 후에 이 말은 그들에게 표어가 되었다. 이날 학생들은 건초더미 아래서 기도하며 선교사로 나갈 것을 서약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건초더미 기도운동'(The Haystack Prayer Movement)의 시작이다. 이들은 다른 학생들에게 세계선교의 관심을 역설하면서 그 모임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1808년 9월 이 모임을 공식적으로 결성하고 그 명칭을 '형제회'(The Society of the Brethren)라고 하였다.

이 모임은 후에 앤도버 신학교의 '선교안내협회'로 이어진다. 이 '선교안내협회'는 100년 이상 존속하며 세계선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알려주고, 지역교회에 선교의 사명을 일깨워주었다. 이 연구회의 영향으로 1856년 미국 내 156개 대학과 46개의 신학교 가운데 70여개의 대학에 다양한 신앙 및 선교단체들이 결성되었으며, 70개 대학 중 49개 대학에는 해외 선교에 역점을 둔 '∼선교안내협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골든 체인의 두 번째 고리는 'YMCA 운동'과 위샤드(Luther D. Wishard)이다. YMCA는 1844년 영국 런던에서 윌리암스(George Williams)에 의해 창설된 대도시 청년 선교운동이었다. 당시 이 기관의 주요 강조점은 복음전파의 필수부분으로서 사회복지와 구제 사업을 통한 복음전파였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급성장하여 1850년대 미국 캠퍼스의 부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의 주도적 인물 중 한사람인 위샤드는 1877년 하노버(Harnover)와 프린스턴(Princeton) 대학의 YMCA에서 활동했다. 위샤드의 지휘아래 YMCA의 파생그룹인 대학 연합 그룹들은, 미국의 최고 유수 대학 안에서 활동을 유지하다가 점차적으로 선교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위샤드는 7년간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을 했다. 특히 그는 해외 선교에 관심이 많았으며 전 대학을 통합할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위샤드는 그때 당시 YMCA의 지도자였던 무디를 만나서 YMCA의 학생 연합회들이 노스필드의 무디 학교에서 연례총회를 개최할 것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SVM이 대학연합운동이 된 것도 위샤드의 비전과 활동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 번째 고리는 '프린스턴 해외선교회'와 와일더(Robert Wilder)이다. 와일더는 '형제회'의 회원으로 인도에서 30년 동안 선교활동을 한 다음 건강 때문에 돌아와 '세계선교'(The Missionary of the World)라는 월간지를 창간했던 로얄 와일더(Royal G. Wilder)의 아들로서, 인도에 태어나 1881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매일 정오에 친구들과 함께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였으며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1883년 '프린스턴 해외선교회'를 조직하였다. 이 선교회는 주일 오후마다 와일더의 집에 모여 기도하였고, 회원들은 세계 어디든지 비복음화된 지역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자진해서 기꺼이” 가겠다고 자신들을 헌신 하였다. 특별히 1885년에서 1886년 사이에 일천 명의 선교 헌신자들이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 그룹은 학생 자원 운동의 추진력이 되었다.

네 번째 고리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7인” 전도 사역의 파생 그룹이었다. 1870년대의 영국 제도에서의 무디의 설교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학생들 사이에 부흥 운동을 가져왔다. 케임브리지의 회심자들 중에 스터드 (C.T Studd) 와 스탠리 스미스(stan-ley Smith)는 둘 다 유명한 운동선수들로서 동료 다섯 명과 함께 케임브리지 선교 7인을 결성하였다. 무디의 설교에 많은 감동을 받은 이 대학 운동선수들은 선교사로서 중국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의 결정은 전영국의 관심을 모았고 그들이 다른 영국 대학에서 선교 사역에 대하여 유세를 시작했을 때 많은 동조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모두 허드슨 테일러(J Hu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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