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공원 현장 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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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립 공원 현장 답사 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대문 형무소
독립문
EPILOGUE

본문내용


5월 13일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서대문 형무소에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독립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서대문 형무소 전체를 관람한 후, 사진을 몇 장 찍고 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으나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너무나 많은 볼거리는 우리의 발을 묶어두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하 보고서에는 서대문 형무소 및 독립문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내용을 기재하고 , 에필로그 부분에서 그에 대한 본 답사 보고서를 적고자 한다.

서대문 형무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감옥이 지어져 80여년 동안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이 땅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침략하려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그들의 침략에 항거하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투옥시키기 위한 감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한제국시대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건립한 독립문 근처에 1907년부터 대규모로 감옥을 지었다.

독립문 :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1896년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자리에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웠다. 창건 당시의 면적 2,800㎡ 이었으며, 총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3,825원이 소요되었다. 완공일은 1897년 11월 20일이다. 현재의 면적은 2,640㎡이다.

프랑스의 에투알개선문을 본떠서 서 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를 하였다. 공역은 건축기사 심의석이 담당하고 노역(勞役)은 주로 중국인 노무자들을 고용하였다. 공사비는 주로 기부금으로 충당, 1897년에 준공하였다. 재료는 주로 화강암을 사용하였는데, 구조는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서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문 앞에는 구 영은문의 주초(柱礎)였던 두 돌기둥이 있다. 1979년 성산대로를 개설하면서 원래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서 북서쪽으로 70m 떨어진 곳으로 이전, 복원하고 예전자리에는 독립문지라는 표지판을 묻어놓았다

- 출처 : 서대문 구청 홈페이지 -











EPILOGUE

한국 문화사 숙제를 위해 찾은 현저동 독립공원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우뚝 선 독립문이었다. 다만 그 위치가 본 자리에서 70M 떨어진 복원품 이라는 생각에 아쉬울 따름이었다. 위치를 옮긴 까닭이 도로 공사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역사적 상징물이 도로보다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웠다.
독립문은 일제에 대한 독립이 아니라 청에 대한 독립을 의미하는 문이라고 알고 있기에 독립공원의 전체적 의미 통일에는 문제가 있는 듯 하다. 그래도 사대주의에 대한 청산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 만큼 그 기세가 위풍당당해 보이기 그지 이를 데가 없었다. 독립문에서 간단한 사진 촬영을 하고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립문에서 형무소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니 3.1 독립선언기념탑을 만날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위엄 있고 멋진 기념탑이었으나 그 역시 이사 온 유물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3.1독립선언기념탑은 원래 탑골공원에 있었으나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주관하여 국민의 성금으로 그해 8월15일 제막되었다가 1979년 공원 정비사업 때 뜻하지 않게 철거되었다가 각계의 항의에 힘입어 독립 의지의 상징인 이곳 독립공원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기념탑의 중앙에 우뚝 솟은 인물상의 조각 및 검은 현판과 회색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좌대, 청동의 동상이 매우 세련된 멋을 풍겼으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만한 현대의 작품이기에 역사적인 유적이라기보다는 그 숭고한 의미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