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역사] 제4장 문자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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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의 역사] 제4장 문자 체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제1절 한문의 정착
제2절 고유명사 표기
제3절 이두
제4절 구결
제5절 향찰
제6절 훈민정음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고유한 문자를 가지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내지 2500년쯤 이웃한 국가였던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차자라 한다. 차자 표기의 방식에는 한자의 표음적 기능과 표의적 기능을 택하여 사용하는 방식으로서 초기에는 이 두 방법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한자의 우리말 표기에 대한 노력은 이 문자를 빌려 쓰되 문장 구조를 우리말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어와 중국어는 말소리와 문법 구성에 있어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용법상으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 표기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차자표기를 이용한 방식은 실질적 형태소까지 다양한 차자표기법이 활용되는 향찰과 문법형태소나 이에 준하는 형태소에 한하여 차자표기법을 활용하는 이두문으로 나뉘어 진다.
또한 한문의 원문을 변개시키지 않고, 문법 단위의 끝에 본문의 오른쪽이나 왼쪽에 토를 달아 우리말로 새겨 읽는 일종의 번역체 문장인 구결의 방식이 있다.
이러한 한자의 음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전통적인 방식, 특히 음절말음을 분리하여 음소문자처럼 사용하던 방식은 훈민정음 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문자 그 자체는 대단히 불완전한 것이어서 우리말의 표기 수단으로서 충분한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배경과 필요에 의하여 당시 조선 주변 민족들의 문자사용과 음성학·운서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15세기에 훈민정음이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문자의 차용과 창제의 모습에 주목하여 문자 체계의 변화와 당시의 모습을 남아있는 자료에 주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제4장 문자 체계

오늘날 알려진 한자의 가장 오랜 모습은 갑골문자인데 이는 대체로 은나라 중엽에서 주나라 초기(기원전 14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사용되었다. 한자는 우리 조상들이 접한 최초의 문자였다. 한자는 고대 동아시아의 유일한 문자였던 것이다. 이것이 주변 민족들 사이에 퍼지는 과정에서 맨 처음 뿌리를 박은 것이 우리 나라였다.
한자의 수입은 중국과의 언어 접촉의 결과였다. 이 접촉의 초기에 있어서는 아마도 단어의 처용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이 가중되면서 한자의 전체계를 도급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국세가 팽창하고 국정이 복잡해짐에 따라 지배계층은 기록의 절실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으며 한자에 의존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국어로 쓰는 것과 자국어로 쓰는 두 방향의 노력이 싹텄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1절 한문의 정착

지금 한문 정착의 자세한 과정이나 확실한 연대를 알기는 어려우나 고구려에서는 留記 100권을 新集으로 개수하고, 백제에서는 書記, 신라에서는 國史를 편찬하였다고 하니, 이로써 고대 삼국에서는 한문이 매우 일찍부터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한문은 고대 삼국의 문자생활을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상태는 19세기말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입으로 말하는 언어와 글을 쓰는 언어의 불일치 즉, 언문이치를 오랫동안 가지게 되었다. 라틴어를 문어인 동시에 구어로 사용하였던 중세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문인들은 입으로는 국어를 말하고 글로는 한문을 썼다는 매우 특수한 의미에서 이언어 사용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특수한 의미의 이언어 사용은 매우 중요한 연구 결과가 된다. 왜냐하면 그 문어와 구어 사이에 간섭의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문어(한문)의 구어(국어)에 대한 엄청난 간섭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국어 어휘 속의 방대한 한자어는 이 간섭의 결과인 것이다.

제2절 고유명사 표기

한자는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발달된 글자였다. 중국어는(특히 고전중국어) 단어가 단절음으로 되어있어 각 단음절 단어를 한 문자 단위로 표기하는 원칙을 사용하여, 하나 하나의 한자는 한 단어의 의미와 동시에 그 발음을 나타나게 되었다.
고대 삼국의 사서를 보면 인명,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표기를 함으로 자국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유명사의 표기는 한자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자국어 표기의 첫 단계이다. 그러나 한자는 중국어와 다른 구조를 가진 언어 표기에 부적합했다. 중국말을 표기하기에 적합한 중국문자를 우리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한자차용표기법을 사용했다. 그 표기법의 원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표의적 기능을 버리고 표음적기능만 취한 경우
이는 한자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어떠한 음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한자가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한자의 육서(한자의 구조 및 사용에 관한 여섯 가지의 명칭.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를 이른다) 중 차자의 원리와 통합된다. 이 원리에 따라 사용된 한자를 음독이라고 부른다.

참고문헌

이익섭, 『국어학개설』, 학연사, 2008.
이기문, 『국어사개설』, 민중서관, 1961.
남풍현, 『(國語史를 위한) 口訣硏究』, 태학사, 2002.
김상대,『口訣文의 硏究』, 한신문화사, 1993.
양주동, 『古歌硏究』, 일조각, 1965.
김완진,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강신항, 『훈민정음연구』,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3.

-참고사이트
디지털한글박물관, http://www.hangeulmuseum.org/
구결학회, http://www.kugyol.or.kr/
문화재청홈페이지,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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