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인식론) 물질과_의식의_경계를_넘어서 - 베르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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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식론](인식론) 물질과_의식의_경계를_넘어서 - 베르그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3. 의식에 대한 현대철학의 이론들 Ⅱ:
베르그손의 의식 이론


3-1. 베르그손의 생애

현대 프랑스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 1859 ~ 1941)은 폴란드에서 이민 온 유대계 가문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출생한 베르그손은 어린 시절부터 “더 이상 예의바를 수 없을 정도로 모범적인 소년”, “최고로 우수한 학생”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는 파리 최고의 명문인 고등사범학교에 3등으로 들어간 뒤에도(1등을 한 학생은 뒷날 프랑스 최고의 사회주의자이자 베르그손의 절친한 친구가 된 장 조레스였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지냈으며, 친구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유대계 영국인이었던 베르그손은 그 덕분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 ~ 1903)나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과 같은 영국 철학자들의 책을 탐독했으며, 관념적인 전통 철학보다는 자연과학에 더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1889년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으로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베르그손은 1896년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을 발표하여 학계의 인정을 얻은 뒤, 소르본대학의 교수가 되고자 몇 차례 응모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1900년에 꼴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교수가 되어 처음에는 고대 철학을, 이후에는 현대 철학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그는 곧 프랑스 학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철학자가 되었다. 그 결과 베르그손은 프랑스정부가 주는 최고훈장(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1928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창조적 진화󰡕(L'Evolution créatrice, 1907)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932) 등의 저서를 통해 생전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베르그손은 이른바 ‘생철학’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현대철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고, 1941년 1월 독일 점령 하의 파리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죽는 순간 그는 생전에 파리의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마칠 때 늘 했던 말, 즉 “Messieurs, il est 5 heure. Le cours est terminé(여러분, 5시입니다. 강의는 끝났습니다)”라고 읊조렸다고 한다. “태어나서 일하고 죽었다”는 평을 들을 만큼 평생 동안 오로지 연구와 강의에만 몰두했던 학자의 마지막 말로서는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내용
3-2. 베르그손의 지속 이론(새로운 형이상학과 인식론)

자신의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해 달라는 어느 부인의 청에 대해 베르그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시간이 있고, 그리고 그것은 공간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은 이 말이 베르그손의 철학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는 최초의 저작인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에서부터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면서, 전자를 통해 단순한 물질과 구분되는 우리 의식의 특성을 설명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시간은 지속을 그 특성으로 하는 하나의 질적 흐름이며 동적(動的)인 운동이자 진행과정이지만, 반면에 공간은 연장(延長)을 그 특성으로 하는 양적인 것으로서 정지되고 완성된 결과로서의 물질세계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사실 의식이란 우리 자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도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의식을 직접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늘 사물의 형식과 틀을 빌려서, 즉 공간적 사유를 통해서 의식을 이해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자각하고 이제 공간적 사유방식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는 것과는 달리 나에게 직접 드러나는 그대로의 의식을 파악하자는 것이 베르그손의 의도였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그의 생각은 후설의 현상학의 이념과 상당히 유사하다. 실제로 후설은 베르그손의 철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신의 사상과 매우 비슷하다고 감탄했으며, 베르그손의 책을 열심히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설은 의식에 드러나는 것을 ‘현상’이라고 부름으로써 여전히 칸트로 대표되는 철학적 관념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반면, 자연과학(특히 생물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베르그손은 ‘의식에 드러나는 것’을 하나의 직접적인 실재(reality)로 인정한다.
전통 철학의 사유방식을 뒤집어서 객관이 아니라 주관의 형식이 우리의 인식 내용을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 칸트의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die kopernikanische Wendung)라면 베르그손은 이를 다시 뒤집어 우리 주관이 외부세계를 보는 눈 자체가 외부세계의 존재방식에 물들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주관의 형식 자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의 존재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은 칸트가 말한 것처럼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형식에 의해 단번에 결정되는 게 아니라 모두 다 정도의 차이를 지닌 채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세부적 내용은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 즉 데이터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어쨌든 우리 주관의 형식들 또한 외부세계의 어떤 면을 일정하게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현상’일 수만은 없고 외부세계의 어떤 진실(칸트의 어법으로는 ‘물자체’)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며, 또 우리 자신도 내부로부터 직접 파악되는 것이므로 전면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생명 전체와 연결되는 자신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굳이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물자체’ 같은 것을 상정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의 앎은 부분적일지라도 그 자체로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 자신의 한계 때문에 완전한 앎(= sophia/지혜)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 앎을 추구하는 자세(= philos/사랑)를 가리키는 데에서 비롯되었듯이, 우리가 우리 의식에 주어지는 것들에 충실하게 집중했을 때 거기서 얻어지는 앎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손은 이처럼 우리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시간으로서의 지속이며, 따라서 이제 모든 것을 ‘지속의 상(相) 아래서’(sub specie durationis)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베르그손의 철학은 ‘지속의 철학’인 셈이다. 베르그손이 말하는 지속이란 진정한 운동이자 존재 그 자체다. 외부의 물질세계를 자르고 재단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며 살아가는 존재자인 인간(= Homo faber)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물질세계와 그 존재방식으로 향해 있으며, 진정한 운동 및 존재 그 자체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예컨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설탕을 물에 녹여 만든 설탕물 자체(= 결과)이지 설탕이 물에 다 녹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나 과정이 아니다. 그런 시간은 짧아지거나 아예 없어지는 편이 더 낫다. 또 야구공이 허공을 날아올 때에도 대개 그 공이 어떤 속도로 어떤 궤적을 날아오느냐, 따라서 내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잡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공의 움직임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는 대체로 최종 결과로서의 고정된 사물들만을 인식하며, 끊임없이 그러한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운동과정과 시간의 흐름 자체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운동과정의 결과는 언제나 하나의 ‘물’(物),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사물들은 늘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들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글, 흰 종이 위에 써져있는 검은 활자들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활자들은 내 손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찍어낸 것일 뿐이며, 내 손을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든 것은 일정한 내용을 지닌 내 정신이다. 그리고 이 활자들이 표현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정확하고 풍부한 표현으로, 아무리 많은 글을 써서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전달하려 해도 그 결과가 결코 완벽하지는 않다. 쉽게 말해 내 마음을 까뒤집어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을 공간 속에 꺼내어 고정된 사물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란 보이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글자들은 훨씬 더 풍부한 내 정신의 극히 불완전한 복사품,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진실로 중요한 것,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은 아니지만, 그 그림자를 산출한 정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에 해당되는 것, 무한히 풍부하며 그때그때 자신의 극히 일부만을 공간 위에 펼쳐 보이는 것, 공간을 향한 우리의 감각이나 추상적 지성으로는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것, 그러나 단지 추상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의 흐름, 운동 그 자체로서의 지속’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이야말로 물질과 구분되는 우리 정신(= 의식)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인간의 지성은 그 풍부한 실재로서의 지속으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추상해내고 그것을 자신에게 편리하게 공간 속에 재배치한다. 그러나 그 추상물은 사물의 표면에서 뽑아낸 것이며, 오직 그 표면에만 관계한다. 우리는 표면에 만족하지 못할 때 사물을 쪼개보기도 하지만, 그때에도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쪼개진 표면뿐이며 그 표면은 다시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되어버린다. 지성의 이런 습관은 너무나 철두철미하여 우리는 눈앞에서 전개되는 운동(공간 운동)을 볼 때에도 운동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운동의 공간적 측면, 즉 죽어있는 공간적 궤적의 이동만을 보며, 거기서도 다시 운동하는 물체를 추상해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사물’(= 운동하는 물체)이 죽은 공간의 궤적을 따라 이동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진짜 실재하는 것은 운동의 공간적 궤적이 아니라 운동(= 흐름) 그 자체이며, 운동하는 물체와 운동의 궤적은 지성이 추출해낸 추상적인 껍데기일 뿐이다. 운동 그 자체와 그 공간적 궤적을 혼동하는 대표적인 예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Zenon of Elea)이 제시한 역설이다. 아킬레스가 자신보다 몇 발짝 앞서서 출발한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은 사실상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운동을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운동의 공간적 궤적으로 이해한 데서 온 혼란이다. 왜냐하면 운동의 궤적은 동질적이고 상호병치적(juxtaposition)이어서 분할될 수 있지만, 운동 그 자체는 이질적이고 상호 침투하는 것(interpénétration) 것이어서 분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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