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국어사_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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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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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국어사
 
1. 국어사의 연구 방법(1)
(1) 연구대상과 목적①국어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의 모든 것이 반영되어 있는 거울이다.②국어의 역사적 연구는 큰 실용성을 지니고 있다.③국어의 계통과 형성을 구명하여 음운, 어휘, 문법상의 변화 규칙을 밝힌다.
(2) 국어사의 연구 방법 : 역사언어학 방법(통시언어학)①문헌자료의 연구  ②비교방법  ③내적 재구  ④방언의 연구*문헌자료를 연구할 때 명심해야 할 두 가지 : 문자의 보수성(例 : "?"),                                           : 문자의 환영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서지학 : 책의 겉모양과 종이의 질, 서체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내적 재구 : 어떤 공시적 상태가 보여주는 암시에 근거하여 그 이전의 상태를 재구하는 방법
 
2. 국어사의 연구 방법(2)
*19세기 후반에 독일의 소장문법학파가 "음운변화의 규칙성"을 주장한 이래 역사언어학은 큰 발전을 이룩하였고 오늘날도 이것이 역사언어학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었다.
(1) 음운변화①조건변화 : 동화(구개음화, 움라우트현상), 이화(음운도치)②무조건변화 : 모음추이
(2) 문법변화①문법변화의 가장 중요한 절차는 "유추"이다.②유추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유형을 본 받아서 어떤 문법형태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변화를 입는 것③유추는 불규칙적인 형태들을 규칙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④문법체계의 변화 - 어떤 문법범주가 없어지다.                  - 새로운 문법범주가 생긴다.                  - 문법범주는 그냥 있으면서 그것을 나타내는 형태가 바뀐다.
(3) 어휘변화①언어체계 중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입는 것은 "어휘"이다.②어휘변화의 가장 특이한 일면은 "차용"이고, 차용의 결과를 "차용어"라 한다.③국어의 차용어의 주된 공급원은 상고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중국어였고, 중세에 몽고어, 현대에 영어를 비롯한 일본어 등을 들 수 있다.④차용어는 방언들끼리도 행해지고, 음운체계에까지도 변화를 준다.
 
3. 국어의 계통(1)
(1) 언어의 계통적 분류①계통적 분류란 한 조상 언어에서 갈려 나온 언어들을 하나의 어족으로 묶어 분류하는 방법으로 친족관계에 기초를 둔 비교방법을 사용하고 있다.②우랄.알타이어족이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으로 양분된 시기는 20세기 이다.③우랄어족은 핀.우구르제어와 사모예드어를 포괄한다.④알타이어족은 터키제어, 몽고제어, 퉁구스제어를 포괄한다.⑤추크치어, 골랴크어, 캄차달어, 유카길어, 길랴키어 등은 古아시아제어라 불린다.⑥19세기와 20세기 교체기에 국어 계통에 관한 여러 가설(우랄.알타이어족, 일본어, 중국어, 아이누어, 드라비다제어, 인도.유럽어족)이 제기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우랄.알타이 계통설"과 "일본어와의 동계설"이다.
(2) 알타이어족①알타이 제어 : 터키어군(토이기어군), 몽고어군, 퉁구스어군-터키어군 : 고대 터키어 자료로 돌궐문자로 된 돌궐비문과 위구르문자로 된 위구르어 자료가 있다.-몽고어군 : 동쪽으로는 만주, 서쪽으로는 볼가강 하류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퍼져 있고 보통 외몽고와 내몽고를 말하며 몽고어의 가장 오래된 자료는 1225년경 위구르 문자로 쓰여진 칭기스칸 비문이다. 중세자료로는 "元朝秘史(원조비사)"가 중요한데 몽고어를 한자로 기록한 책이다.-퉁구스어군 : 만주.퉁구스어군이라고도 하며 만주어는 17세기에 몽고의 위구르 문자를 고쳐서 만든 문자로 표기되었고 여진어는 독창적인 여진문자로 표기되었다.   옛 문헌으로는 金나라의 여진어와 淸나라의 만주어뿐이다.②알타이 제어의 공통 특질론-음운론적 특징 : 모음조화-문법적 특징 : 교착성, 어간과 접미사의 연결이 기계적이다, 관계대명사와 접속사가 없다, 부동사가 있다.
본문내용
4. 국어의 계통(2)
(1) 국어와 알타이 제어의 비교①음운의 비교-국어와 알타이 제어 사이의 모음의 대응 규칙은 아직 매우 부정확하나 자음의 대응규칙은 제법 수립되어 있다.-어두 자음에서 가장 흥미 깊은 것은 국어의 "ㅂ"과 알타이 조어의 "*P-"의 대응이다.-어두에서 유음의 제약이 공통으로 나타난다.-어중의 자음 대응에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②문법의 비교-알타이 제어의 문법에서 동명사의 어미는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닌다.-중세국어 서술형의 '?糖?? ?鐸〈灸? 등은 본래 ' ', '?鐸?과 같은 동명사에 '-이라'가 붙은 것이고, 의문형의 ' 다, ?愎? ?鐸〈? 등은 ' . ?? ?鐸? 등의 동명사에 '-다'가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알타이 제어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동명사의 어미는 '*-r, *-m, *-n' 등인데 국어에서도 이들 어미의 반사형이 확인된다.*-r 의 반사형 : 중세국어의 동명사어미 '-( /으)ㄹ' *-m 의 반사형 : 중세국어의 파생어미 '-( /으)ㅁ', 동명사어미 '-(오/우)ㅁ'*-n 의 반사형 : 중세국어의 동명사어미 '-( /으)ㄴ"③어휘의 비교-알타이 제어 중에서 어휘의 일치가 가장 많은 것은 퉁구스 제어이다.-국어와 터키제어에 특수한 일치는 중세국어 온(百), 고대터키어 on(+) 등으로 매우 적다.④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일본어 계통론에 있어서는 북방계설과 남방계설이 대립되어 왔는데, 일본어와 국어의 동계설은 북방계설을 대표하는 것이다.-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 : 통사구조상의 일치, 어두자음 조직의 제약, 파생법과 굴절법의 일치-일본어의 특이한 구조적 특징의 하나 : 개음절성(開音節性)-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에서 주의할 것은 고대의 차용이다.(고대 국어 단어들이 일본어에 차용된 것)
(2) 국어의 계통적 위치①국어를 알타이 어족의 일원으로 보고 이 어족 안에서의 그 위치에 대한 가설을 세워 본 것은 람스테드(Ramstedt)와 포페(poppe)였다.②특히 포페는 알타이 제어의 親疎(친소)관계와 그 분화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말하였는데, 한국어의 언어 재(財)는 퉁구스 제어와 가장 가깝다고 하였다.
 
5. 문자체계(1)
(1) 한문의 정착①오늘날 알려진 한자의 가장 오랜 모습은 갑골문자인데 이는 대체로 은나라 중엽에서 주나라 초기(기원전 14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사용되었다.②한문 정착의 과정-고구려에서는 건국 초에 "유기"100권을 서기 600년에 "신집"5권으로 고쳐지었다.-백제에서는 375년에 "서기"를 편찬하였다.-신라에서는 545년에 "국사"를 편찬하였다.-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의 문자 사용의 산 증거로 남아있다.③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한자로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지 않고 한문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구어와 문어의 불일치(언문이치)를 오랫동안 가진다.
(2) 고유명사 표기①한자를 빌어 인명, 지명, 관명 들을 표기한 것이다.(자국어 표기의 첫 단계이기도 하다)②이 표기법의 원리는 표음적 기능(음독자)과 표의적 기능(석독자=훈독자)의 두 가지이다.③표음적(表音的) 기능은 한자의 육서(六書) 중 가차(假借)의 원리에 통하는 것으로 완전한 독창이라 할 수 없다.④표의적(表意的) 기능은 표의성을 자국어의 단어로 고정시키는 원리로 우리 조상들의 독창이라 할 수 있다.⑤ 표음적기능('古'자를 의미(옛날)와는 관계없이 '고'라고만 읽는 것)표의적기능('水'자를 음(수)과는 관계없이 고구려에서는 '매'로, 신라에서는 '믈'로 나타낸 것)
(3) 이두(吏讀)①한자를 국어의 문장 구조에 따라 배열하던 표기 방법(조사와 어미까지 표기한다)②이두의 첫 싹은 고구려에서 텄지만 본격적인 발달은 신라에서 이루어졌다.③이두의 명칭은 이토(吏吐), 이도(吏道), 이서(吏書)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서(吏書)는 "제왕운기"에, 이도(吏道)는 "대명률직해"에 나타난다.④신라 이두의 가장 이른 예는 "임신서기석"에서 볼 수 있는데, 신라어를 어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⑤이보다 조금 더 발달한 이두의 예는 "남산신성비"에서 볼 수 있는데, 모두 석독 되는 점이 주목된다.⑥본격적인 이두의 예는 "갈항사조탑기"에서 볼 수 있는데, 음독 표시가 주목된다.⑦이두는 고려, 조선을 거쳐 19세기말까지 오래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첫째, 이서(吏胥)들 사이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었던 것이 이두였고, 둘째로 우리 나라 문자 생활의 상층부를 이루었던 한자의 후광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6. 문자체계(2)
(1) 구결(口訣)①구결이란 '입겾' 또는 '입겿'의 한자 차용 표기로 흔히 '토(吐)'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②이 말들은 모두 15세기의 "세종실록" 및 초기의 언해본들에 나타난다.③구결이란 한문을 읽을 때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삽입하는 요소들을 말한다.④구결이 이두와 다른 점은 한자의 약체(略體)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 爲(위),    = 是(시),  ㅁ = 古(고),  七 = 尼(니),  ∩ = 也(야) )⑤구결에는 음독구결과 석독구결(훈독구결)의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⑥음독구결은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한문 원문을 읽을 때 우리말 문법 요소를 끼워 넣어 읽는 것이고, 석독구결은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석독구결에 따라 한문 원문을 읽으면 한문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2) 향찰(鄕札)①향찰은 신라에 있어서 한자를 이용하여 신라어를 표기하려는 노력의 집대성이었다.②향찰은 실질적 의미 부분(어간)은 석독 표기로, 문법적 요소(접미사)는 음독 표기로 하는게 원칙이다.③향찰은 음절구조가 복잡하여 국어를 만족스럽게 표기하지 못했다.
(3) 훈민정음(訓民正音)①훈민정음은 세종 25년에 창제하고, 세종 28년에 반포된 독창성과 과학성을 가진 문자이다.②그러나 이 문자가 온 국민의 문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것은 19세기와 20세기의 교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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