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정치 사회] 이라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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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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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이라크의 고대 역사

1. 고대 문명과 이슬람의 출현
2. 이슬람 정복시대에서 1차 세계 대전까지

3. 영국 위임통치와 이라크 하쉼 왕조

1. 영국의 위임통치 상황
2. 이라크 하쉼 왕조 등장

4. 이라크 혁명

1.하쉼왕조의 붕괴와 이라크 혁명
2.공화정 설립과 이후의 혼란

5. 후세인 집권과 이란-이라크 전쟁

1. 후세인의 집권과 정치 변화
2. 이란-이라크 전쟁

6. 걸프 전쟁에서 민주정의 설립까지

1. 걸프 전쟁
2. 이라크 전쟁의 발생
3. 민주정부 설립과 향후 전망
4. 쿠르드족 문제


7. 결 론

본문내용
2.이라크의 고대 역사

1. 고대 문명과 이슬람의 출현

이라크의 고대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비옥한 반달 모양의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일반적으로 서아시아 거의 전역을 가리키며 지금의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 포함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 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최초로 도시 국가적인 형태를 띈 이 지역의 초기 지배자는 약 BC 3300년 전의 수메르인 들로 그 후 BC 18세기에 셈족 계통의 아무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바빌론시를 중심으로 고(古)바빌로니아로 불리는 제1왕조를 세우면서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의 왕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BC 13세기에는 앗시리아의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하였고, BC 6세기에는 칼데아인들이 앗시리아인을 멸망시키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계승하며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웠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BC 550년경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더와 정면 승부를 하다가 BC 330년경에 막을 내리고 알렉산더로 하여금 헬레니즘 시대를 열게 한다.
약 300년간의 헬레니즘 시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 지역은 새로운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왕조의 창시자 아르사케스의 이름을 따 아르사크 왕조라고 하는 파르티아 왕조는 226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다. 사산왕조는 말기가 되자 재차 비잔틴제국과 이민족의 침입에 직면한 데다, 궁정 내의 세력 갈등이 곁들여 국력이 갑자기 쇠미해지고, 야즈 다기르드 3세(재위 632~651) 때 아라비아군의 침입을 받아 주권을 상실하였다. 그의 아들 페로즈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국의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알려진 바로는 기원전 4000여년경부터 이 지역에 선진 문명이 존재했다고 하지만 바빌론은 기원전 2500여년경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 600마일에 달하는 지역에 건설됐다. 그곳은 비옥한 초승달지대로 메소포타미아라고 예전부터 알려져 왔던 곳이다.
바빌론의 유명한 공중정원은 고대 7대불가사의 중 하나로 그 중요도에 있어서 2번째(이집트 피라미드가 첫번째)에 올라있다. 화가 브뤼겔의 상상으로 1563년에 그려진 바벨탑 그림은 로테르담에 있는 박물관에 있으며, 이 탑은 성경 창세기에 보면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라는 구절에 나와 있다. 또한 바빌론은 요한계시록과 이사야서에도 언급돼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배우게 되는 함무라비 법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왕국을 통합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고대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업적을 자랑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인 함무라비는 43년동안 바빌로니아를 통치했는데 그 기간 동안 바빌론은 서아시아 역사에서 정치와 모든 지성의 중심으로 자리했고 이는 기독교시대가 오기전까지 지속됐다.
기원전 605년경 바빌론의 왕이 된 네부카드네자르왕은 그 지역에서 이집트인들을 몰아내고 시리아를 합병하면서 그의 왕국을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까지로 확장시켰다. 또한 그는 공중정원을 만들어 자신의 왕국을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새 궁전을 15년만에 짓도록 했고, 신들을 위한 사원을 세웠으며, 도시를 둘러싸고 성벽과 호를 둘렀으며, 전국에 운하를 놓았다. 역사가들은 이 운하망이 그 지역의 농업을 발전시키게 한 관개, 토목공사 등의 과학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네부카드네자르왕은 유대 왕국과 전쟁을 벌였고 기원전 588년경 그 수도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강제 추방시키고 바빌론의 노예가 되게 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겨나 오랜동안 떠돌던 유대인들에 관한 내용과 예루살렘의 파괴 등은 구약성경에 나와있다. 네부카드네자르왕 시대의 바빌론에 대한 역사의 부정적 인식은 바로 이 비극으로 인한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자만의 상징인 바벨탑에 대한 전설도 한몫
참고문헌

사담 후세인 (위대한 영웅인가? 극악한 테러리스트인가?) - 김동문 / 시공사
걸프전쟁 - 문은영 /2002년 중동연구 제 20권
중동분쟁과 나세리즘 - 최동주 / 한국아프리카학회지 /2002.1
걸프전 이후의 새로운 중동국제질서 -최성권 / 전북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 1992
이라크 위기의 역사 -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3. 02
미 기밀서류로 본 미국 - 김재명 / 월간중앙 2004년 3월호
한국 국방 연구원 http://www.kida.re.kr/
한국 외국어 대학교 중동연구소 http://segero.hufs.ac.kr/middleeast/index.html
국가정보원 http://www.nis.go.kr/ 
명지대 중동문제 연구센터 http://home.mju.ac.kr/~menaps/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192297
CNN 한글뉴스 http://www.joins.com/cnn
브리테니커 http://delux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25h3186a
http://windshoes.new21.org/index.htm
홍성민의 중동지역 http://hopia.net/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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