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세사] 조선통신사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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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세사] 조선통신사의 성격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1. 조선 전기(임진왜란 이전)의 통신사
2. 조선 후기(임진왜란 이후)의 통신사
-국교의 재개
-통신사의 파견
-통신사 파견절차
-통신사에 대한 영접
-통신사의 성격
3. 18세기 이후 통신사의 쇠퇴
나오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란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幕府將軍에게 보낸 공적인 외교사절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1413년(태종 13)이었으나, 사행使行의 정사正使 박분朴賁이 중도에 병이나 중지되었다. 그 뒤 1428년(세종 10) 통신사란 명칭으로 정사正使 박서생朴瑞生 이하의 사절단이 파견되었다. 이후 통신사의 파견은 정례화되어 조朝·일日 양국간에 우호교린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조선 전기와 후기(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하여)의 통신사 성격은 다르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조선후기에 파견된 통신사를 중점적으로 살핌으로써, 조선후기 조․일의 양국관계와 조선통신사의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조선 전기(임진왜란 이전)의 통신사
조선 건국 후 1403년(태종 3)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책봉 받고,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정권(足利政權)도 ‘일본국왕日本國王’ 책봉을 받아 조선․중국․일본간에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때 조선과 일본 두 나라는 대등한 국가로서, 조선 국왕과 일본 막부장군은 양국의 최고통치권자로서 상호간에 사절使節을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 국왕이 막부장군(일본국왕으로 칭함)에게 보내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일본과의 사절 왕래가 많아 조선 사절의 일본 파견이 18회에 달하였고, 일국왕사의 조선 파견은 71회에 달한다. 그러나 조선 국왕이 파견한 사절이 모두 통신사의 호칭을 갖지는 않는다. 회례사回禮使·회례관回禮官·보빙사報聘使․경차관敬差官․통신사․통신관通信官 등 일정치 않았고, 목적과 편성도 다양했다. 이때, ‘통신’이라는 용어는 외교관계를 가지는 두 나라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신의信義를 통通하여 교류한다는 뜻으로 쓰이기에 이것들을 일괄적으로 통신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이 파견한 통신사는 다음과 같은 조건과 목적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조선 국왕으로부터 일본국왕(막부장군)에게 파견된다. 둘째, 일본 국왕의 길흉조사, 도는 양국간의 긴급한 문제해결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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