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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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40년대 문학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解放期 時代狀況

Ⅰ. 序論

Ⅱ. 本論

1. 文壇의 狀況

1)政府樹立 전의 문단 상황

2)정부수립 이후의 문단

3) 平壤文壇과 越北文人

2. 문학이론

3. 친일문학 해결 문제

Ⅱ. 結語



1940年代 前期文學

Ⅰ. 序論

1. 硏究史 槪觀

2. 日帝 暗黑期의 狀況

Ⅱ. 本論

1. 發表媒體

2. 암흑기의 문학계

Ⅲ. 結論



解放期의 시문학

Ⅰ.序論

Ⅱ. 本論

1. 解放 직후 시문단의 상황

2.시문단의 두 경향

Ⅲ. 結論



解放期 小說

Ⅰ. 序論

Ⅱ. 本論

1. 주요작품

2. 소설의 현실인식의 경향

Ⅲ. 結語

解放期의 戱曲

Ⅰ. 序論

Ⅱ. 本論

Ⅲ. 結論

解放期 批評

Ⅰ. 序論

Ⅱ. 本論

1. 좌익 전횡기

2. 좌우대립 초기

3. 좌우 대립기

4. 우익정착기

Ⅲ. 結語

1940년대 結語

1940년대 전기

Ⅰ. 시

Ⅱ. 소설

Ⅲ. 비평

1940년대 후반기

Ⅰ. 시

Ⅱ. 소설

Ⅲ. 비평

Ⅳ. 희곡


본문내용
Ⅱ. 本論
1. 文壇의 狀況
1)政府樹立 전의 문단 상황
左翼系列
①朝鮮文學建設本部 - 1945년 8월 16일, 感激의 하루가 지난 후 종로 한청빌딩에 자리잡고 있던 朝鮮文人報國會의 간판이 내려졌다. 일제 침략 세력에 함께 同調해 온 조선문인보국회는 많은 문인들의 이름 앞에 친일 문학이라는 烙印을 남기고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 그 자리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새로운 간판이 걸렸다. 林和․李太俊․金南天․李源朝 등의 主動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누구도 이들의 행동을 막지 않았고, 이들이 내세운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어떤 이념을 내세우고 어떠한 문학운동을 전개해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문인들이 다시 뜻을 모아 진정한 우리 민족문학의 건설에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조선문학건설본부」와 함께 「朝鮮音樂建設本部」․「朝鮮美術建設本部」․「朝鮮映畵建設本部」등의 看板이 나란히 걸리게 되면서 이들이 연합하여 「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를 發足한 것은 이틀 후인 1945년 8월 18일이었다. 모든 조직의 지휘는 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 임화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書記長에 취임하면서 예술활동 전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배후에는 공산당의 세력이 있었고, 「카프」당시의 경력(「카프」의 서기장)도 크게 작용하였다. 1935년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해산되었던 「카프」에 연관이 있는 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많은 문인들이 「文建」의 조직에 가담하였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결국 해방 직후 대외적인 최초의 문화단체가 되었으며, 그 방향이 어찌 되었든간에 모든 과도기적인 문화 행정의 최고 중앙협의회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관지로서 《文化戰線》을 간행하여 점차 그 활동을 적극화시키기 시작하였다.
②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 임화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지도노선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일군의 문인들은, 1935년 「카프」의 해산 당시 조직의 해산을 반대했던 이른바 「카프 비해소파」에 속하는 李箕永․韓曉․宋影․尹基鼎 등이었다. 이들은 李東珪․朴世永․洪九․洪曉民 등과 함께 耶蘇빌딩에 자리잡고 잇던 《東洋之光》(일제 말엽에 간행된 친일 잡지)사에 모여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별도의 문학단체를 조직하고자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임화를 문학 통일전선의 攪亂者로 몰아붙이면서 처음에는 「革命作家同盟」이라는 단체를 만들려 했으나, 1945년 9월 17일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이라는 새로운 문단 조직을 정식으로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던 각 부문의 예술인들이 「조선프롤레타리아 음악동맹」,「조선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조선프롤레타리아 연극동맹」등을 조직하게 되자, 이들이 함께 규합된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이 1945년 9월 30일에 發足되었던 것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이라는 명칭은, 1925년에 조직되어 1935년에 해체되었던 「카프」와 동일한 명칭인데, 이기영 등은 식민지 시대의 「카프」의 정신을 이어받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정통성을 그들의 새로운 단체가 이어받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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