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전소설의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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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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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 밝혀진 작자들
- 비판적 지식인
- 직업적 작자층, 그리고 몰락 양반층
- 판소리계 소설의 작자
- 대하소설의 작자
- 여성 작자와 공동 창작
Ⅲ. 결론
본문내용

■ 비판적 지식인

한국 고전소설은 15세기경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김시습이 당시의 대표적 작가였고, 이어 신광한, 허균 등이 나타났다. 이들은 당대의 사회적 통념상 소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는데도 소설을 창작했으며 대체로 당대의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이름이 알려진 고소설의 작자는 대체적으로 사대부 출신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김시습, 임제, 허균, 김만중, 박지원처럼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지녔고 유·불·도에 능통하였으나, 역경 속에 산 사람이 있다. 또, 김소행처럼 서출이라는 조건만 제외하면 뛰어난 문재를 지녀 환로에 오를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지닌 사람도 있었고, 탕옹처럼 한문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지만 그리 탁월한 정도는 아닌 한미한 양반, 한은규처럼 한문의 구사에도 능하지 못하면서 완전히 농촌에 묻혀 지내는 몰락 양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당시의 지식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들이 소설을 지은 동기는 김시습, 허균, 박지원 등의 경우처럼 자기의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문학 형식을 빌어 이야기한 경우도 있고, 김만중이나 조성기의 경우처럼 어머니의 무료함을 달래고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해 지은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이순이나 목태림의 경우처럼 허구적인 소설 형식을 빌려 도덕적 진실을 추구하는 뜻에서 소설을 지은 경우도 있다. 한은규 같은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방편으로 소설을 짓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이들이 소설을 지은 동기는 다양하다.
이런 소설 창작에 대해 어느 정도 반작용도 있었지만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긍정적인 인식이 점점 확대되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한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서 시대에 관해 고민하던 문인이었다. 작품 창작의 동기는 이러한 그의 비판적 성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금오신화』에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 등 다섯 편의 단편을 실었다. 「이생규장전(이생이 담 너머로 아가씨를 엿본 이야기)」 어느 날 송도의 서생인 이생은 최처녀 집 담 안을 엿보았다. 아름다운 최처녀는 수를 놓다가 시를 읊었는데 이생이 그를 듣고 답하는 시를 지어 담 안으로 던졌다. 두 사람은 그 날 저녁 최처녀집 뜰에서 만나 사랑을 약속하고 그 뒤로 이생은 저녁마다 최처녀를 찾았다. 아들의 행실을 이상히 여긴 이생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방으로 쫓아 보내고 이를 들은 최처녀는 너무나 상심하여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된다. 이후 끊어졌던 사랑이 이어져 부부가 되었고, 이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홍건적이 침략해 피난을 가던 중 서로 헤어지고 부인은 도적에게 사로잡혀 정조를 지키려다 죽임을 당한다. 난리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온 이생이 옛날을 생각하고 한숨짓고 있는데 아내가 나타났다. 이후 두 사람은 두서너해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부인은 떠나고 두서너 달 만에 이생도 세상을 떠난다.
「만복사저포기(만복사에서 저포놀이 한 이야기)」 어느 봄날 양씨 성을 가진 서생이 저포놀이에서 부처님이 이기면 자기가 불공을 드리고, 자기가 이기면 아름다운 배필을 구해 달라며 저포를 던졌다. 양생이 이기자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께 축원문을 드렸는데, 그를 듣다가 숨었던 곳에서 뛰쳐나간 양생은 곧 그 아가씨와 마음이 통해 하루를 보낸다. 이윽고 날이 새려 하자 아가씨는 양생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권하여 양생은 그 집에서 머물렀다. 사흘 뒤 아가씨는 양생에게 이별을 고하며 주발을 하나 내어주며 다음날 자신의 부모님께 그 주발을 증거 삼아 인사를 드려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양생이 아가씨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아가씨는 왜구의 난리 때 죽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아가씨가 나타났지만 양생의 눈에만 보일 뿐이었다. 둘은 절에 있는 한 방에서 지낸 뒤 애끓는 슬픔 속에서 이별했다. 양생은 아가씨의 무덤을 찾아 장례를 지낸 뒤 재산을 다 팔아 절로 가서 재를 지냈다. 그랬더니 여인이 나타나, 양생의 은덕을 입어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양생은 그 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고 한다.
「취유부벽정기(부벽정에서 취하여 놀았던 이야기)」 송도의 부상(富商)인 홍서생이 평양을 유람하던 중이었다. 그는 친구와 어울려 놀다가 술에 거나하게 취하고 좋은 경치에 이끌려 홀로 부벽정에 올랐다. 지나간 역사를 생각하니 무한한 감회가 솟아 흥망성쇠를 한탄하는 시를 읊었다. 이 때 나라가 망성쇠후에 신선 세계에서 살고 있시를 성쇠귀부인이 나타나 홍서생과 더불어 시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홍서생은 상사병에 병들어 누웠는데 꿈이 나그 귀부인의 시녀가 와서 상제께서 그대를 부르신다고 했다. 꿈에서 깬 서생은 목욕얬 신선하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용궁부연록(용궁 잔치에 초대받은 이야기)」 송도에 글 잘하는 한생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푸른 옷을 입고 복두를 쓴 사람이 나타나 용왕의 명령으로 그를 모시러 왔다고 한다. 한생이 그를 따라 용궁으로 가니 용왕이 출가하게 된 딸을 위해 새 궁궐을 짓는 중인데 상량문을 지어달라고 한다. 한생이 상량문을 지어주니 용왕은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었다. 한생은 돌아올 때 구슬 두 개와 비단 두 필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득 깨어 보니 꿈이었다. 그가 놀라 주머니를 만져 보니 구슬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후 그는 산 속에 들어갔는데 그 뒤의 행적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남염부주지(남쪽 저승을 구경한 이야기)」 경주에 사는 박생은 번번이 과거에 실패하여 꿈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는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유교 경전에 전념하며 세상의 이치는 하나뿐이라는 내용의 을 쓰기도 하였다. 어느 날 그는 꿈에 저승사자를 따라 염부주라는 세계에 이르러 염라대왕과 사상적인 담론을 벌인다. 그는 다방면에 걸친 문답을 통하여 자신의 지식이 타당한 것임을 확인하고 염라대왕은 그의 참된 지식을 칭찬하고 그 능력을 인정하여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위문(禪位文)을 내려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박생은 가사를 정리하고 얼마 뒤 병이 들어 죽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가 많이 삽입되어있는데, 이는 김시습이 한시를 지을 만한 교양을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지상계와 이계를 넘나드는 환상적 요소 또한 작품 속에 적지 않은데, 이는 그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허구적 세계에서 풀어내려했음을 뜻한다.
신광한(1484~1555)은 그의 도덕과 문장으로 성세창, 정사룡 등과 함께 당대 최고로 평가받던 사람이다. 그는 사림파에 속하는 명신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언관으로 활동하다가 기묘사화 때 기묘사림으로 몰려 15년 동안 여주에 칩거한다. 이후 그는 다시 발탁되어 각종 판서를 역임한다. 신광한은 관직에서 물러나 칩거할 때 「안빙몽유록」, 「서재야회록」, 「최생우진기」, 「하생기우전」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 네 편을 실은『기재기이』를 집필하였다. 그는 가전ㆍ몽유록ㆍ전기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쓴 이 책에서 당시 권력층에게 박해를 받던 사림의 상황을 우의적으로 그려냈다. 「안빙몽유록」에서 주인공 안빙은 꿈에 꽃의 나라를 유람하고 돌아온다. 등장인물들은 꽃의 의인화인 동시에 역사상의 실제 인물들을 암시한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의인화한 조래선생과 수양처사 등의 언행을 통하여 기묘사화를 거친 당시의 조정에 대한 작자의 비판 의식이 표출된다.
「서재야회록」은 주인공이 서재에서 문방사우의 의인화 인물들을 만나 함께 글을 지으며 놀았다는 이야기이다. 작자는 모친상을 당했을 때 고양에서 여묘살이를 하였는데, 고양씨의 후손이라고 소개한 작중 인물은 작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작중배경인 서재도 아마 이곳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생우진기」는 주인공 최생이 수부의 잔치에 참여하여 신선들과 글을 주고받으며 즐긴 이야기이다. 훌륭한 임금은 홍수나 가뭄 등을 운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선정을 통해 해결한다는 작중인물의 말이 작자의 정치철학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생기우전」은 주인공 하생이 무덤 속에 들어가 죽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여인을 살려내어 함께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여인의 부친은 높은 벼슬을 하며 권력을 남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그 죄값으로 아들 다섯이 모두 요절하였다. 인과응보가 철저히 실현되어야 한다는 작자의 생각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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