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벽란도를 통한 고려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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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커뮤니케이션] 벽란도를 통한 고려의 소통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1. 들어가며

2. 벽란도

3. 벽란도를 통한 고려의 무역 소통

(1) 일본과의 소통

(2) 아라비아와의 소통

(3) 송과의 소통

(4) 거란과의 소통

4. 맺으면서

본문내용
우선 고려왕조의 선대는 강충(康忠)이나 작제건(作帝建)의 혼인설화가 모두 바다와 관련되어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신라 말에 일어났던 해상세력으로 추측 된다.
그래서 인지 고려는 일찍부터 중국과의 통교를 통해 교역 하였다.
934년(태조17) 7월에는 고려 상선이 후당(後唐) 등주(登州)에 가서 교역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고려의 배가 청주(靑州)에서 무역을 하였으며 958년(광종9)에는
후주(後周)에서 비단 수천필로 구리를 무역해 온 기록도 있다.
이러한 대외무역의 중심지가 바로 벽란도였다.
예성강은 황해도 고달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를 따라 황해로 들어가는데, 이 일대는 산지지형에 가까워 강의 흐름이 비교적 빠르며 바다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조수가 밀려드는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물이 깊어 선박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었으며 고려시대의 국도(國都)였던 개성과 가까이 위치하였던 관계로 벽란도는 고려 시대 제일의 하항이자 실질적인 유일의 국제 항구로서 발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송나라 상인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멀리 남양지방(南洋地方)과 서역지방(西域地方)의 해상들까지 자주 드나들며 교역을 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