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대혁명과 중국사회상(현 중국사회 변동의 동인 분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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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문화대혁명과 중국사회상(현 중국사회 변동의 동인 분석을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문제제기 및 연구 목적

Ⅱ. 문화대혁명의 기초적 사실 (배경 및 전개과정)

Ⅲ. 문화대혁명과 현재 중국 사회상과의 상관성 (영향 및 동인 여부)
1. 정치적 측면
1) 국내정치 부문
2) 대외관계 부문
2. 경제적 측면
1) 국내경제 부문
2) 대외경제 부문
3. 사회문화적 측면(사상부문을 중심으로)

Ⅳ. 평가 및 소결

본문내용
Ⅲ. 문화대혁명이 현대 중국 사회상과의 상관성

1. 정치적 측면

1) 국내 정치 부문

마오저뚱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은 수정주의 타파라는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 투쟁으로부터 홍위병과 기타 세력에 의해 기존의 중국내 모든 직위들이 박탈당하는 ‘탈권(奪權)투쟁’의 과정으로 이행되었다. 1996년 6월 1일자 人民日報는 그 사설에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도권 쟁탈을 위한 권력 투쟁이다.”라고 주장했고 1997년 1월 22일자 사설에서도 “혁명의 근본문제는 정권문제인데 문화대혁명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한바탕 탈권 투쟁이며, 억만군중이 당내의 한 주먹밖에 되지 않는 자본주의 길을 걷고 있는 당권파에 의한 탈권 운동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마오저뚱 자신만의 우상 숭배적 이론화와 접목시켜 내건 마오저뚱사상을 매개로 발동된 문혁은 기존 당권파에 대한 대대적 숙청 작업이었으며 이러한 숙청 운동과정이 마오저뚱으로부터 주도됨은 물론 당시 홍위병과 추종세력의 자발적이면서도 광적인 폭력성으로 인해 중국의 거의 모든 사회조직과 헌정질서가 와해되고 파괴되는 전국적 내란 형태로 확대되었다고 규명할 수 있다. 한편, 10년간 지속되는 문화대혁명 과정 속에 한때는 軍의 정치세력확대라는 부작용도 파생되었으나 린비아오 사건을 통해 ‘당고군저(黨高軍低)’라는 당에 의한 군지배 전통은 이때부터 확립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마오저뚱의 정치사상이 문혁이전까지 잔존해있었던 봉건제적 요소나 관료제도를 타파하는데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러한 역할을 토대로 마오저뚱사상이나 문혁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비록 마오주석의 이론이 당시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하더라도 극단적인 권력 투쟁 과정에서 노정된 중국 사회의 낙후와 무질서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퇴행이었으며, 자신의 의견과 입장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적’의 개념으로 적용시켜버리는 왜곡된 ‘인치(人治)’는 마오저뚱 이후 떵시아오핑 정권의 1989년 천안문 시위의 반민주적인 정치적 행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생한 중국 정부의 파룬공 탄압은 자유시장경제 노선을 걷고 있는 국가라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 1992년 5월, 중국 사회에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총본산인 법륜대법연구회를 정점으로 39개의 수련총부, 1,900개의 지부, 2만 8천 개의 수련장이 세워졌고, 1억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생겨났다. 이렇듯 법륜공 수련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중국 정부는 1999년 7월, 법륜대법연구회와 산하 조직을 불법화하고,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조처를 취하는 한편, 파룬궁을 단순한 사교집단으로 몰아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법륜공 지도부 70여 명이 검거되고, 베이징에서만 1만 명, 중국 전역에서 3만여 명에 달하는 수행자들이 구금되는 한편, 2001년 현재까지 237명이 목숨을 잃고, 600여 명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법륜공의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중국 정부의 강경 대처는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중국 정부의 이러한 조처가 법륜공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과 함께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최대의 인권탄압으로서, 언론자유 및 종교·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고 비판함으로써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법륜공 탄압을 강력 비난하면서 국제연합을 통해 중국 규탄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2008년 베이징 올림픽경기대회 유치 신청을 기각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해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촉구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이러한 현대 중국 사회상을 문화대혁명과 연관지어 분석해 볼 때, 영국 의회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서구 유럽 통치 체제처럼 국가권력과 정책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집권자가 추진하는 정치적 행위를 적법 절차를 이용하여 반대 의견들을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발의하는 충성스러운 반대 표출 기제가 결여된 점이 당시 중국 문화 대혁명 시기를 기점으로 현재 중국 특정 인민들에 대한 탄압까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더 나아가 문혁의 의도와 결과 역시 현대 중국 통치 체제의 강압성과 비민주적 혹은 반인권적 행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페어뱅크는 중국 정치 문화의 특성을 중국통치체제 특유의 ‘음모 메커니즘’에 의해 정권의 폭력성이 반복 표출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중국통치체제내에서 정책이라 함은 곧 통치자의 도덕적 행위, 따라서 그의 정통성의 일부였으므로 자유로운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부재한다고 보고 ‘반대’는 항시 비밀스러운 것이야만 한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곧 ‘공개적 직언’을 통한 자발적 수용이 아닌 ‘비밀결사’로부터의 야기되는 음모와 의심의 과정이 재촉되어 중공의 원로 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적’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러한 적의 규명은 숙청과 탈권의 과정을 더욱 자극하고 문화대혁명은 물론이고 1989년 천안문 사태도 기존에 내재되어 있던 의심과 분노가 표출된 지배층 폭력성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John King Fairbank and Merle Goldman, 김형종, 신성곤 역 “新中國史” (서울: 까치, 1994), 475-76쪽

참고문헌
국문 단행본
John King Fairbank and Merle Goldman, 김형종, 신성곤 역 “新中國史” (서울: 까치, 1994),

국문 논문
심영수, 「문화대혁명이 중국경제에 미친 영향」, 『순천향사회과학연구 논문집』, 제1권 2호 (1995)
전명용, 「중국문화대혁명과 중국문화」, 『강남대학교 논문집』제32호 (1998)
최관장, 「중국문화대혁명에 관한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 논문』

검색 사이트
www.naver.com
www.google.com

언론매체
주간조선, 2006년 7월 16일자 기사
매일경제, 2005년 1월 5일자 기사

인터뷰 참조
刘荣(리우롱) (現. 중국 四川성 四川大学 海外敎育學院 對外漢語系 教授) 2006년 11월 12일 18시 (전화인터뷰)
张军(짱쮠) (본교 국제경영대학원 석사과정), 2006년 11월 14일 13시, (장소 : 국제경영대학관 3층 석사연구실)
李健營(리찌엔롱) (중국 北京市 北京物資學院 会计系), 2006년 11월 16일 19시, (MSN 화상대화)
陈俐颖(쳔리잉) (아태 국제대학원 GSP 전공), 2006년 11월 17일 15시, (장소 : 아태 1층 international service center)
闫铮(옌쩡) (아태 국제대학원 GSP 전공), 2006년 11월 17일 15시 30분, (장소 : 아태 1층 international service center)
宗薇(쫑웨이) (중국 北京市 北京音樂大學 piano전공), 2006년 11월 17일 23시, (MSN 화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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