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타이포그래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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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미술]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모더니즘 타이포그래피
얀 치홀트 –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아버지
스위스 모더니즘
과도기
볼프강 바인가르트 –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미국(자본주의 사회)의 타이포그래피
폴 랜드
허브 루발린
네빌 브로디 – 영국
데이빗 카슨
후기

본문내용
모더니즘 타이포그래피
바우하우스가 디자인에 있어서 모더니즘의 시작이라 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우하우스를 논하지 않고는 디자인의 역사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역사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막강하다. 먼저 바우하우스를 살펴보도록 하자.
1차대전의 패전으로 독일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한다. 서민들이 삶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싼 값의 대량생산품들(당시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기였다.)은 그 겉모습과 기능면에서 조악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자본의 부족으로 제품의 품질에 신경을 쓸 수 없었고 돈이 없는 서민들은 불편하더라도 그 물건들을 사서 써야만 했다.
일찍이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산업사회로 갈수록 조악해지는 생산품들에 대한 대안을 내놓은 역사상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그는 중세의 고딕정신 – 건축가, 공예가, 미술가, 금은 세공사 들이 ‘성스러운 고딕성당’이라는 일관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온 힘을 쏟는 – 에 입각해 인간 삶의 공간을 일관된 흐름 속에 넣고자 했다. 바로 역사에 길이 남을 ‘미술공예운동’이다. 하지만 그가 택한 길은 산업사회와 선을 긋는 수공예의 방법론이었고 생산과정에서의 고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실패한 운동으로 남게 된다. 기계화된 사회에서 인간 노동력의 가치가 무색해지는 것에 환멸을 느껴 인간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공예가 가지는 의미를 잡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에서 ‘독일공작연맹’이라는 단체가 생기게 된다. 미술공예운동의 실패의 원인을 바로잡고 미적인 영역과 산업화가 같이 굴러가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고소득 계층을 위한 미적 영역에만 관심을 돌리게 된다. 독일공작연맹의 일원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이러한 모습에 한계를 느끼고 1919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일의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한국 사회의 시각으로 봤을 때 사회재건의 도구로 디자인을 택했다는 것은 굉장히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독일의 역사를 조금만 찾아본다면 이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독일은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는 1차대전 이전의 독일제국과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대부분의 기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1차대전의 이전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독일표현주의 작가들(미술, 문학영역)이었고 전후에 이들이 사회를 이끄는 세대들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주의 이념이 긍정적으로 뿌리내려진 국가에 그것을 이끄는 지식인들이 문학과 미술 전반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바우하우스라는 것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기관이었지 않았나 싶다.
앞선 미술공예운동과 독일공작연맹에서 저지른 실수들을 발판으로 바우하우스는 본격적으로 현실적인 대안들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산업화에 알맞은 디자인의 형태, 기계화 되는 사회의 사람들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목표였다. 미술공예운동과 마찬가지로 고딕정신을 내걸고 건축, 디자인, 공예, 미술 모든 분야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굴러가는 총체예술, 그것이 바우하우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