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대부흥 운동 -경과와 선교사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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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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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평양 대부흥운동의 역사적, 교회적 배경
1. 역사적 배경 2. 교회적 배경

Ⅱ. 발단 - 평양대부흥운동의 전야
1. 장감평양선교사 사경회 2. 서울선교사 사경회와 존스톤
3. 목포 부흥회 4. 장대현 교회 준비 기도회

Ⅲ. 전개 - 한국의 오순절, 평양 대부흥운동
1. 한국의 첫 번째 오순절 이야기
2. 두 번째 오순절 이야기
3. 성령께서 선교사 공동체에 찾아오시다
4. 평양전역으로 확산되는 불길

Ⅳ. 절정 - 전국으로 확산되는 부흥의 불길
1. 전국으로 흩어진 부흥의 증인들
2. 전국에서 타오르는 부흥의 불길
3. 부흥의 불길, 그 선봉에 선 길선주
4. 중국으로 번진 부흥의 불길

Ⅴ. 부흥운동의 결과와 영향
1. 선교사들의 기도회 2. 장대현 교회 새벽기도
3. 세계적인 부흥사들의 입국 4. 백만인 구령운동 전개
5. 영적각성이 사회개혁으로 6. 대 부흥 운동으로 인한 교회성장
7. 연합운동

Ⅵ. 평양 대부흥운동의 의의와 고찰
1. 평양대부흥운동의 신학적 고찰
2. 평양 대부흥운동, 그 이후 한국교회
3. 1907년 대부흥운동과 초기 한국교회의 갱신과 자기발견에 관한 연구
4. 교회의 갱신과 자기발견 5. 맺음말

본문내용
Ⅱ. 발단 - 평양대부흥운동의 전야

1906년 신년부흥회를 통해 부흥운동의 열기가 더욱 더 저변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1906년 하반기에 접어들어 평양선교사 사경회, 서울선교사 사경회, 목포부흥회, 그리고 장대현교회 준비기도회 등 네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1906년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열린 평양선교사사경회에서 평양 지역에 있는 모든 남녀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일주일간 사경회를 개최한다. 강사는 원산부흥운동의 주역 하디였다.

1. 장감평양선교사 사경회

그 당시 참석했던 장대현 교회 담임목사 이길함, 번하이젤 선교사, 1894년에 순교한 제임스 홀 선교사의 아내 로제타 셔우드 홀과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은 큰 도전과 은혜를 받는 경험을 한다. 하디가 제임스 홀이 세운 평양 남산현감리교회에 와서 평양선교사들을 위해 사경회를 인도한다. 이 당시 하디의 설교는 어린 셔우드 홀의 가슴에 큰 파문이 되어 깊이 새겨진다. 이렇게 해서 셔우드 홀은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 선교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설립한다. 버림 받은 한국의 폐결핵 환자들을 위한 최초의 결핵 요양원이었고, 수많은 폐결핵 환자들이 치료받고 새 생명을 얻는다.
성령께서 어떻게 자기 마음에 임하셨는지 차분하고 조용하게 전하는 하디의 간증과 설교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난다. 이 때 가장 큰 은혜를 받은 평양장대현교회 담임목사 이길함은 은혜를 받은 요한 1서를 가지고 장대현 교회 제직들을 모아놓고 자체 사경회를 연다.

2. 서울선교사 사경회와 존스톤

1906년 하반기에 있었던 중요한 두 번째 사건은 서울선교사 사경회였다. 이 사경회의 주강사는 미국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 위원이었던 존스턴이었다. 존스톤은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웨일즈와 인도에서 일어난 부흥운동 소식을 전하며 한국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존스톤의 설교는 한국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의 시각을 바꾸어준다. 평양주재 한국의 선교사들은 존스톤으로부터 인도 부흥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들이 가졌던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존스톤은 서울선교사 사경회를 마친 후 평양을 방문하여 장대현 교회에서 주일예배 선교를 인도한다. 이날 존스톤은 영국 웨일즈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가 인도 교회에 번져 부흥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음을 말하면서 조선에서 누가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 이반 로버츠처럼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당시에 신학생이자 장로였던 길선주가 성령의 감화를 받고 손을 들고 일어선다. 이것을 본 존스톤 박사는 장차 조선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고, 길선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길선주 장로는 존스톤의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3. 목포 부흥회

1906년 하반기에 일어난 세 번째 중요한 사건은 목포부흥회였다. 1906년 가을 프레스톤이 담당하고 있는 목포지역에서 감리교 선교사인 저다인을 강사로 부흥집회가 열린다. 이때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강하게 임한다.
그 즈음에 평양 지역에서도 강력한 영적각성 움직임이 감지되었는데 평양 지역에 곧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강하게 일기 시작한다. 1906년 12월 26일부터 일 주일간 평양시내 장로교 선교사들과 감리교 선교사들은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를 주강사로 모시고 매일 저녁 기도회를 가지며 1907년 1월에 열리는 평안남도 겨울 남자 도사경회 때 영적대각성운동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