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

 1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1
 2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2
 3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3
 4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4
 5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5
 6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6
 7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7
 8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8
 9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9
 10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10
 11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11
 12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12
 13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1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역사교재]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동북공정과 간도문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지도 일시
지도 대상
단원
학습 주제
학습 형태
학습목표
학습매체
지도단계
도입
전개
정리


본문내용
2. 동북공정의 배경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로, 79년 북한이 ‘조선전사’를 발행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북한이 주체사상 확립을 위해 ‘조선전사’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특별히 강조한 데 대한 중국측의 반발이었다.
주로 중국의 동북 지방(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 역사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연구는 1980, 90년대를 거치면서 1,000편이 넘는 논문이 발표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시기 중국 학자들의 연구는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방국인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국가정책 때문이었다.
그러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라 큰 이슈로 등장한 것은 2001년 북한이 고구려 벽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부터였다. 1998년 10월 세계유산협약 가입국이 된 북한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문화자산보존 및 복원연구국제센터(ICCROM)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아 유적을 정비한 뒤 2001년 등재 신청했다.
만약 북한의 벽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고구려=중국사’라고 주장해온 중국으로서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고구려 문화가 한국의 것이라는 사실이 온 세계에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급히 문화부 차관을 북한에 보내 고구려 유적을 공동으로 등재하자고 권유했으나 거절당했다.
이 때부터 고구려 문제는 중국의 중요한 국가적 정책과제가 되었다. 그 구체적 예가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3. ‘고구려사=중국사’ 라고 하는 증거는?
1.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기원전 3세기 모두 연(燕)의 영역이었고, 진(秦)이 6국을 통일한 뒤는 진나라의 요동외요(遼東外邀)에 속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가 위만(衛滿)조선을 멸망시키고 현토군을 설치했는데, 이 때 고구려는 현토군의 한 현이었다. 기원전 37년 주몽이 고구려 5부를 통일하고 나라를 세운 곳도 한나라 현토군의 영토였다. 고구려의 건국은 이처럼 모두 중국 영토에서 진행됐으므로 오늘의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2. 고구려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주몽의 건국 이전 고구려현은 이미 한조(漢朝)의 현토군에 속했다. 동한(東漢) 180년 동안 고구려는 모두 동한 왕조의 신하였다. 220년부터 426년까지 고구려는 중국 중앙정권의 신하로 예속돼 고구려후·고구려왕·정동대장군·영주사사(營州刺史)·낙랑군공(樂浪郡公)·낙안군공(樂安郡公) 같은 관직을 받았다.
남북조 시기에는 북위·북제 및 남조의 각 정권에 공물을 바쳤다. 또 북위·북제 및 남조 역대에서 내린 고구려왕·도독요해제군사(都督遼海諸軍事)·정동장군(征東將軍)·요동군공(遼海郡公)·영호동이중랑장(領護東夷中郞將)·산기상시(散騎常侍)·동이교위(東夷校尉)·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같은 관직과 직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