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심리학] 프로이드의 생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프로이트의 생애와 정신분석의 역사
1. 제1기 1856년 프로이트의 출생에서 1897년까지
손상이론의 시기(affect-trauma frame of reference)
2. 제2기 1897년~1923년, 성격구조론을 발표하기까지
지정학설 시기(topographical frame of reference)
3. 제3기 1923년~1939년, 프로이트 사망시까지
구조론시기(structural theory of reference)
4. 제4기 1939년부터 현재까지
프로이트 이후의 발전
Ⅲ. 프로이트의 시대적 배경
1. 사회 정치적 배경
2. 과학적 배경
IV. 프로이드의 주요 이론
1. 발달 단계 이론
1) 구순기(구강기)
2) 항문기
3) 남근기
3) 남근기
4) 잠복기
5) 생식기
2. 성격 이론
1) 원초아(Id)
2) 자아(Ego)
3) 초자아(Superego)
4) 성격의 역동성(Dynamics of Personality)
3. 충동 이론
1) 정신적 에너지
2) 리비도
4. 무의식과 의식
5.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V. 프로이드의 작품
1. 꿈의 해석
2. 정신분석 강의
3. 히스테리 연구
4.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5.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6.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7. 꼬마 한스와 도라
8. 늑대 인간
9.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10. 무의식에 관하여
11. 문명 속의 불만
12. 예술과 정신분석
13.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14. 정신분석 운동
15. 쾌락 원칙을 넘어서
16. 종교의 기원
17. 나의 이력서
본문내용
Ⅰ. 서론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발견자로서 흔히 콜롬버스에 비유되어 왔다. 프로이트의 죽음을 전하면서 는 사설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인류는 이제까지 세 번에 걸친 커다란 통사를 경험해 왔다. 먼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우주에 대한 지구 중심의 꿈이 여지없이 깨져 버렸고, 다음으로는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을뿐이라는 다윈의 주장은 신의 아들이라는 인간의 자존심을, 그 환상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인간은 스스로 자아를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는 가엾은 동물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냄으로써 인류에 세번째 통사를 가져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저, 민희식 역, 「정신분석」, (서울 : 정민미디어, 2003). p. 280.
그리고 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아인슈타인과 함께 프로이트를 표지 인물로 뽑았다. 그리고 그를 인류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 중 일곱번째 사람으로 뽑았다. 정신분석이 인간 행동의 이해, 유아기 성욕의 발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강력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류에게 무의식 세계의 문을 열어서 무의식 세계의 실상을 보여준 것은 굉장한 업적이다. 정신과적으로도 정신질환 치료이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서울 : 도서출판 이유, 2003.), p. 13
Ⅱ. 프로이트의 생애와 정신분석의 역사
먼저, 프로이트의 성품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당신의 치료 목표는?’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본능에 지배되는 이드 대신에 책임 있는 자아가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이성주의자이며 합리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는 범성욕주의자라고 불리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생애에서 오직 한 사람의 부인만을 사랑하고 여러 명의 자녀를 낳아 평화로운 시민으로 살아갔다. 빈에 살면서도 그는 오페라극장에는 거의 들르지 않고(실은 음치였던모양이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를 즐겼기 때문에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말년에는 암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진통제인 마약을 최후의 순간까지도 거부했던 것이다. 그의 취미는 여행과 등산 그리고 피서지에서의 버섯따기와 고미술품의 수집(2000점) 정도였던 것 같다. 그의 인생목표는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이라는 그야말로 견실한 생활 그 자체였다.
한편 학문의 세계에서의 프로이트는 시종일관 철저하고도 완고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의 초창기에는 그의 학문에 매료되어 많은 동료와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는 프로이트로부터 점차 많은 지인과 제자들이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예를들어 정신분석학의 왕자로 불리며 프로이트의 후계자로까지 예견되었던 의사 융은 리비도이론에 대한 그와의 견해차이로 결국 프로이트와 결별한다. 의사 애들러는 그가 제안한 이나 ,권력에로의 의지>라는 개념을 프로이트가 중시하지 않고 거의 주목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프로이트를 떠나 독자적으로 을 만들게 되었다.
온화하면서도 밝은 성품의 페렌치는 오랜 기간 동안 프로이트와 협조적인 관계 속에서 계속 일해 오다가 만년에 그가 고안한 친절하면서도 부드러운 치료기법(적극요법, 이완요법)이 프로이트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요법에서는 환자들에게 결코 현실적인 만족을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의 준수를 제자들에게 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