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행동론] 미라이 공업의 유토피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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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직행동론] 미라이 공업의 유토피아 경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유토피아 경영 ‘야마다 사장
2.선풍기 승진 - 성과주의는 필요 없다
3.제품의 90%가 특허 상품
4.사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잘 된다
5.미라이 공업 창업주 야마다 사장의 말! 말! 말!
6.돈뿐 아니라 일할 기분도 준다
7.중소기업은 성과주의 안 맞아
8.직원이 감동해야 회사가 잘돼
9.종업원 때문에라도 대기업 안 해
10.미라이공업에 많거나 긴 것
11.미라이공업에 없거나 적은 것
12.최근 3년 경상이익율
본문내용
―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분하지 않을까요?
“원래 뭘 해도 잘하는 걸 기뻐하면서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게 공자(孔子)의 가르침이야. 한국, 중국, 일본 사람 모두 그런 마음이 있어.”

― 동양인에게 성과주의는?
“난 안 맞는다고 생각해. 물론 다른 경우도 있지. 노무라 증권을 ‘노르마(노동 목표 할당량)증권’이라고 하잖아. 늘 노르마, 노르마, 노르마…. 그래도 일본 최고 (증권사). 일본 최고의 대기업이라면 성과주의가 가능해. 나름대로 운영 논리가 있는 법이거든. 하지만 우리 중소기업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

―왜요?
“원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니까.(웃음) 열심히 하면 많이 받고, 안 하면 적게 받는다면, ‘그래, 난 됐어요. 적게 받아도 돼요’ 하면 그만.
일본 평균 월급은 30만엔. 높은 편이니까. ‘난 됐어요’해도 생활이 가능하거든.
오사카에 ‘아사히솔라’란 일본 최고 태양열 온수기 판매회사가 있었지. 망했어.
노르마 때문에. 잘 팔면 돈을 더 준다고 하니까 소비자에게 멀쩡한 물건을 문제 있다고 속여서 팔아먹었지. 일본은 99.9%가 중소기업이야.”
물론 야마다는 일본식 평등주의의 폐해를 지킨 것이 아니다. 사원의 안정과 헌신을 위해 연공서열, 종신고용의 미덕을 취하면서 ‘요코나라비(옆으로 나란히 섬)’로 불리는 평준화 의식을 철저히 배제했다.
연간 140일을 노는 미라이 직원 783명은 나머지 220여 일동안 고강도로 일한다.
오직 ‘차별화’를 위해서다. 일본이 야마다에게 열광하는 것은 일본이 지킬 것과 버릴 것을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 1965년 창업부터 잔업, 노르마, 타임카드(출퇴근 시간 기록지)가 없었나요?
“창업 후 10년이 지나서 다 없어졌지. 창업 이래 ‘(남과) 똑같은 물건은 안 만든다’가 방침이야.
차별화 안 하면 밥 못 먹으니까. 40년 전 첫 상품부터 차별화했지. 경쟁 상대가 일본에서 가장 큰 ‘마네시타(흉내냈다는 뜻의 일본어)’란 회사야. ‘마쓰시타(松竹)’라고도 하지.(웃음) 전기는 위험하니까 만드는 법이 법률로 규정돼 있어. 그런데 우리는
같은 물건을 만들면 안돼. (마쓰시타의) ‘내셔널(national)’이라는 절대 브랜드.
우리는 그게 없으니까.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소비자가 ‘편하네’
‘멋지군’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차별화야. 평준화 근성을 깨지 않으면 안됐지. 남들 하는 것을 하나씩 없애니까 10년 만에 다 없어졌어.”
미라이공업의 1만8000종 아이디어 상품 중에는 전기스위치 박스도 있다. 벽 뒤에
장착하는 제품이다.
박스 속 전기 장치가 망가지면 어림잡아 벽을 뚫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미라이공업은 이 박스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이는 작은 조치로 시장을 장악했다.
휴대용 금속탐지기로 위치를 찾아내 정확히벽을 뚫을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다.
미라이공업은 늘 사원들에게 작은 아이디어를 쪽지로 모집한다.
상사 욕, 월급 불만을 제외하면 어떤 내용이라도 일단 500엔. 제품에 적용되면 최고 3만엔까지 준다.

― 회사 슬로건이 ‘항상 생각한다’인데, 여러 면에서 도요타와 닮았는데.
“도요타는 거짓말만 하지. ‘사람을 중시한다, 중시한다’라고 하면서도 비정규직이 많잖아. 우린 전부 정규직. 난 그런 회사 흉내 안 내.”

― 연극에 몰두하다 부친(작고) 회사 전무직에서 해고당하는 수모를 겪었는데.(그는 1957년 설립한 연극 집단 ‘미리이자’에서 무대 감독을 맡았다. “발음이 안 좋아 배우는 못했다”고 했다.)
“부자 관계까지 끊어졌지. 장남이 해고당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