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

 1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1
 2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2
 3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3
 4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4
 5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5
 6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중국역사학] 사기속에 나타난 흉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머릿말
2.흉노(匈奴)란
․대선우(大單于) 묵특(冒頓 기원전 209년~174년)
․한(漢) 무제(武帝) 이전의 흉노정책
․한(漢) 무제(武帝) 이후의 흉노정책
․무제의 흉노토벌의 의의
․흉노토벌에 공을 세운 장군들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속에 나타난 흉노
․장건(BC 139~BC 126)과 실크로드
3.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릿말

사기 속에 나타난 흉노를 통해 한 시대의 국제관계를 알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흉노가 어떻게 해서 한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흉노와의 결전으로 인한 한 무제시대의 사회변화까지..사마천 그 자신도 흉노와 한 무제의 힘 겨루기를 통한 시대의 희생양(이릉의 사건도 흉노족이 그 원인을 제공했으므로)으로도 볼 수 있다. 사마천이 기록한 흉노는 어떤 모습이며 그 모습을 통해 어떻게 한 제국은 국제관계를 유지시켰을까? 이와 더불어 장건을 통한 실크로드의 발전까지..
한안국은 흉노에 대해서 말하길 “흉노는 발빠른 군마(軍馬)를 믿고 금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듯 옮겨다니므로 좀처럼 제압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흉노에 대해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나타낸 말이다.
한 나라의 가장 큰 위협이자 서로 힘을 겨룰 만큼 강력한 유목민족이였던 흉노에 대해 알아보고 사마천의 흉노에 대한 평가도 알아보고자 한다.

2.흉노(匈奴)란

BC 3세기 말부터 AD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 ․만리장성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기마민족(遊牧騎馬民族)
국가의 정의는 통치조직을 가지고 일정한 영토에 정주(定住)하는 다수 인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며, 한 나라 시대의 흉노는 국가의 형태가 아닌 부족연맹단체이다.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예로 순유(淳維)라고 불렸다. 당우(唐虞) 이전에는 산융(山戎), 험윤(獫狁), 등의 여러 종족들이 북쪽의 미개척지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물과 풀을 따라 옮겨 살았기 때문에 성곽이나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농사마저 짓지 않았으나 각자의 세력범위만은 경계가 분명하였다. 사마천/정범진역, 『사기』, 권110, 「흉노열전」, 까치출판사, p.795

기원전 3세기경부터 약 300년간 지금의 몽고(蒙古)지방에서 유목하던 터키족의 일종이다. 일설에는 몽고족이라고도 하는데(지금은 터키족이라는 설이 더 유력), 그 임금은 선우(單于)이다.

공격이나 싸움을 할 때에 적의 목을 베어오는 사람에게는 한 잔 술을 하사하고, 노획품은 노획한 본인에게 주는데, 사람을 생포했을 경우에는 잡은 사람의 노비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는 마당에서 누구나가 이득을 얻으려고 교묘히 적을 유인하여 한꺼번에 내리덮치곤 하였다. 그래서 적을 보기만하면 이득을 바라고 새떼처럼 모여들지만 일단 싸움이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