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

 1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1
 2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2
 3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3
 4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4
 5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5
 6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현대과학] 막스플랑크와 상대성이론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막스 플랑크와 상대성이론

1. 막스 플랑크
2. 아인슈타인
본문내용
1. 막스 플랑크와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학계에서 널리 퍼지게 만드는 데에는 독일 물리학계의 거물인 막스 플랑크 ( Max Planck )의 역할이 컸다. 플랑크는 당시 무명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던『 물리학 연보 』(Annalen der Physik)의 편집인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베를린 대학에서 여러 유능한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었던 독일 과학계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열열히 옹호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이 주제를 선택하도록 독려했는데, 1906년부터 1914년까지 플랑크 밑에서 나온 학위 논문 가운데 무려 3분의 1은 상대론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1906년 발터 카우프만의 실험이 로렌츠-아인슈타인의 이론식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인 아브라함의 식에 더욱 가깝게 나왔을 때에도 플랑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옹호했다. 무엇보다도 플랑크에게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물리학에서의 보편성과 단순성을 뒤받침해준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이론이었다. 막스 플랑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이런 공개적인 지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자신도 1906-7년 사이에 최소 작용의 원리에 바탕을 둔 상대론적 역학을 발전시키는 등 초창기의 상대성이론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1. 막스 플랑크


플랑크는 뮌헨의 막시밀리안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았다. 공부를 잘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물리학에 흥미를 느끼고 1874년 뮌헨 대학에 들어가 1879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열역학 제2법칙과 관계된 것으로, 거기서도 그가 근본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부 세계가 '절대적인' 무엇이라는 그 기대가 그에게는 도전이었다. 플랑크는 "이런 절대적인 것에 작용하는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 내겐 일생의 가장 숭고한 과학적 목적처럼 보였다"고 썼다. 뮌헨과 킬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서 1889년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곳에서 1928년까지 있으면서 많은 위업을 쌓았다.
플랑크가 양자를 발견한 배경에는 19세ㅁ기 말 물리학자들을 괴롭힌 '흑체 복사' 문제가 놓여 있다. 그가 측체 복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문제가 근적으로 중요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859년 구스타프 키르히로프의 발견에 따르면, 물체의 복사열의 성질은 순전히 온도와 파장에 달려 있고 물체 자체의 성질과는 관계가 없다. 어떤 보편적인 효과가 작용하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흑체'가 어떻게 복사열을 방출하는지 검토했지만 곤란한 결과에 부딪쳤다. 고전 법칙에 의하면 모든 복사 에너지를 흡수한 물체의 복사라면 응당 무한한 양의 열과 빛을 가장 짧고 보이지 않는 자외선 파장에서 최고의 강도로 방출해야 한다. 그러나 실험에서 확인된 사실은 이와 달랐다.
용광로처럼 가열된 구멍에서 복사되는 빛은 밝은 황색에서부터 적색, 청색, 그리고 가장 뜨거운 '백열'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고전 물리학은 이 스펙트럼을 예측할 수 없었다. 가장 짧은 파장에 관한 실험에서 예측과 크게 빗나간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외선 카타스트로프(파국)'라 부르기도 했지만, 흑체 복사 문제는 19세기 물리학에서 사소한 쟁점이 아니었다. 이는 열역학 제1법칙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