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 우리나라의 별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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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경학] 우리나라의 별서정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서론
별서정원의 개념
별서정원의 특징
▪ 조경적 측면
▪ 문화적 측면

본론
별서정원의 종류
◈ 소쇄원(瀟灑園)
◈ 부용동정원(芙蓉洞庭園)
◈ 서석지(瑞石池)
◈ 다산초당(茶山草堂)
◈ 윤증선생고택 (尹拯先生故宅)
◈ 청암정(靑巖亭)
◈ 선암서원(仙岩書院)
◈ 임대정 원림 (臨對亭園林)
◈ 담양 후산리 명옥헌원림 (潭陽 后山里 鳴玉軒苑林)
◈ 독수정원림(獨守庭園林)
◈ 운림산방 (雲林山房)
◈ 구례 운조루 (求禮雲鳥樓)
◈ 양동 심수정 (良洞心水亭)
◈ 경주 귀래정 (慶州歸來亭)
◈ 삼괴정 (三槐亭)
본문내용
◈부용동정원(芙蓉洞庭園)
보길도의 부용동정원은 우리나라 삼대 별서정원중(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야합(野合)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정원) 의 하나이다.
윤선도가 이 섬에 들어온 것은 1637년(인조15) 2월, 그의 나이 51세 때이다.
윤선도는 1616년(광해군 8) 성균관유생으로서 이이첨(李爾瞻)·박승종(朴承宗)·유희분(柳希奮) 등 당시 집권세력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병진소 (丙辰疏)〉를 올려, 이로 인하여 이이첨 일파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견회요 (遣懷謠)〉5수와〈우후요(雨後謠)〉1수 등 시조 6수를 지었다. 1년 뒤 경상남도 기장으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이첨 일파가 처형된 뒤 풀려나 의금부도사로 제수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직하고 해남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항복하고 적과 화의를 맺었다고 하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제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잠시 보길도에 들러 이곳 부용동을 접하게 된다. 보길도 해안 전체가 거의 바위로 진입이 어려우나 이곳은 섬 중앙의 격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계곡이 생기고 분지가 있으며, 계곡앞에는 장사도(長蛇島)가 길게 입구를 막아주는 형태이다.
그리고 섬안은 입구를 제외하고 사방이 경사가 심하여 마치 연꽃처럼 오목하여 부용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보길도 천혜의 아름다움에 빠진  윤선도는 백이처럼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기자처럼 은둔하여 거문고를 타며, 관녕처럼 목탑에 앉아 절조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 하면서,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에서 흘러내리는 계류 주변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풀어 정원을 열었다.
 마을 앞에 정자를 지어 손님을 맞이하는 세연정, 윤선도가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글을 읽는  낙서재, 주인의 개인 용도로 활용하는 곡수당, 그리고 차를 마시며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동천 석실 등 다양한 구조의 정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는 12년간 이곳에서 생활을 한다. 또 이곳에서  보길도를 배경으로 '어부사시가'가 태어난다.
부용동정원의 특징으로는 동대와 서대, 그리고 무도암은 다른 별서정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요소이다. 이 요소들은 시, 가, 무 합일이라는 동양 고래의 유교적 예술철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정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부용동 세연지
세연지:자연이 계류를 판석으로 만든 보(길이 11m, 너비 2.5m)를 설치하여 계담을 조성하고 그 옆에 방지를 만들어 계담의 물을 돌려서 흐리게 하여 이를 세연지라 하였다.

◈서석지(瑞石池)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있는 서석지 정원은 1613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이 조성한 정원이다. 정영바은 연당리의 입향선조이며, 이화의 학통을 이어받은 문인이다.
아담한 토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석징 정원에는 경정 주일재등의 건물이 있고, 그 앞에
참고문헌
참고문헌
야생화 전통조경 / 기의호 저
한일 정원문화 비교 연구 : 조선시대와 일본 근세를 중심으로 / 학국외국어대 대학원 (석사)
서울시 별서정원 유적에 관한 연구 / 상명대 대학원 (석사)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 허균
한국의 전통 수경관 / 홍광표, 이상윤, 정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