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실태와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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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Ⅰ. 서론

Ⅱ. 일본 역사 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의 배경
ⅰ)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의 시작
ⅱ)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의 배경
① 황국사관
② 일본 사회의 우경화
③ 역사 교과서 왜곡의 주도세력
④ 역사 교과서 왜곡의 목적

Ⅲ. 후소샤 교과서의 왜곡실태와 그에 대한 반박논리
① 임나일본부설
② 왜구
③ 임진왜란
④ 통신사
⑤ 한일합병
⑥ 태평양전쟁
⑦ 위안부
⑧ 한국병합 - 한반도 위협설
⑨ 징용, 징병
⑩ 왜관

Ⅳ. 해결방안
ⅰ) 국제적 차원에서의 노력
ⅱ) 아시아연대를 통한 노력
ⅲ)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
ⅳ) 시민단체 차원에서의 노력
ⅴ) 독일의 사례를 통해 본 교과서 왜곡 문제 해결의 실마리

Ⅴ. 결론

본문내용
④ 통신사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통신사 관련 서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쇄국하의 대외관계
막부는 이에야스 때 쓰시마 소끼를 통해 히데요시의 출병으로 단절되고 있던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했다. 양국은 대등한 관계를 맺고 조선으로부터는 장군이 바뀔 때마다 통신사라 불리는 사절이 에도를 방문하여 각지에서 환영받았다. 또 조선 부산에는 소씨의 왜관이 설치되어 약 500인의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무역과 정보수집에 종사하였다.

통신사를 쇼군직 취임시 파견하는 사절로 기술함으로써 일본 우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손승철(「일본 역사교과서 고려,조선시대 기술의 왜곡실태 분석」)에 따르면, 일본학계가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보는 주된 이유는 일본의 막부 쇼군이 바뀔 때 조선국왕이 국서를 바치기 위해 통신사를 보냈다는 것과 통신사와 비견되는 일본국왕사가 파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는 통신사의 파견과정과 일본의 접대방식, 외교의례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손승철은 비판한다. 즉 절차상 조선 측에 먼저 통신사파견을 요청하여 이에 조선이 응하였고 통신사 접대는 ‘장군 일대의 성대한 의식’이었으며 일본국왕사가 조선에 파견되지 않는 것은 조선 측이 상경에 거부한 것이며(조선전기 70여회 이상 일본국왕사가 상경), 조선국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대차왜도 102회나 도항하였다는 것이다. 또 15세기 초 삼포왜관(부산포, 제포, 염포)이 임진왜란 후 두모포 왜관으로 다시 1678년 초량왜관으로 변화한 것은 모두 조선이 허가해 준 것인데 이를 ‘소씨왜관’이라 하여 대마도주의 사적왜관으로 기술함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대등한 관계를 맺고”라는 부분은 일본과 조선의 대등한 관계가 계속 지속된 것이 아님을 은근히 암시하는 대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코 일본과 조선이 대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관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서술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7종 역사교과서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에 의한 조선으로부터의 문물 전수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이를 오로지 양국간의 인적 교류로 등치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으로부터의 문물 전수가 아닌 인적 교류 차원으로 보려는 일본측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통신사는 에도시대 12회 방일하였다. 통신사와의 교류는 막부이외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통신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교류를 구하였다-오사카
-통신사 숙소에는 일본 지식인이 방문하여 교류하였다-교이쿠
참고문헌

*참고 문헌

일본의 역사왜곡 21가지』, 송영심⦁오정현, 산호와 진주, 2005,
문답으로 읽는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 역사비평사,
일본 역사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사 왜곡의 실태분석』, 정권숙, 사회과학교육연구, 2002,
일본의 역사왜곡 21가지, 송영심⦁오정현, 산호와 진주, 2005,
일본의 역사 왜곡, 홍윤기, 학민사, 2001
일본교과서 한국역사왜곡의 실제,황백현, 국민독서운동회,1992
일본 역사서의 왜곡과 진실, 경인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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