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

 1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
 2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2
 3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3
 4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4
 5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5
 6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6
 7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7
 8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8
 9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9
 10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0
 11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1
 12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2
 13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3
 14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4
 15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5
 16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6
 17  [아랍 문화사]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역사와 문화-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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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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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우마이야 왕조란?
스페인 우마이야조의 역사
- 전(前)우마이야 왕조의 역사
1. 전우마이야조의 건국
2. 전우마이야조의 이베리아 반도 진출
3. 전우마이야조의 쇠퇴와 멸망
- 후(後)우마이야 왕조의 역사
1. 후우마이야조의 건국
2. 후우마이야조의 위대한 인물
3. 후우마이야조의 쇠퇴와 멸망
- 이슬람의 스페인 지배
1. 안달루시아 왕국 시대
2. 타리파 시대
3. 그라나다 시대
- 레콘퀴스타
1. 배경
2. 과정
3. 무슬림 국가의 붕괴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문화
- 이슬람 스페인의 시문학
1. 후우마이야조의 시기
2. 따와이프 소왕국들의 시기
3. 무라비툰~무와히둔 왕조의 시기
4. 그라나다 왕국의 시기
5. 안달루스의 자연에 대한 경탄
6. 안달루스 인의 향수
7. 국가적 위기에 대한 시
- 스페인의 이슬람 건축
1. 전기 우마이야조의 건축
2. 중세 스페인의 건축
3. 제1기 : 코르도바 또는 칼리프 양식
4. 제 2기 : 알모라비데 및 알모아데 왕국 양식
5. 제 3기 : 그라나다 또는 나사리 왕국 양식
이슬람의 스페인 지배가 미친 영향
본문내용
2. 과정
이 내전은 그 때까지 번영하던 많은 도시들을 파괴시켰으며, 결국 1031년 코르도바의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공화정을 선포한 것을 중심으로 하여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 독립주의의 영향이 퍼지게 된다. 이러한 독립주의의 영향으로 이베리아 반도에는 많은 타이파들이 세워졌다. 타이파들의 종류는 물라디로 구성된 타이파에서 새로 유입된 용병들인 베르베르인들로 구성된 타이파에 이르기 까지 다양했으며, 이러한 타이파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혼란의 틈을 타 가톨릭 왕국이던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가 이들 타이파를 이간질시키면서 1085년에 중심 도시 중 하나인 톨레도를 점령하게 된다. 이것은 타이파에게 더욱 극심한 내정의 위기와 경제적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결국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데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러한 알모라비데인들의 이베리아 반도 상륙은 1031년부터 계속되었던 타이파 시대의 종말과 이슬람교에 의한 이베리아의 정치적 재통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알모라비데인들은 1086년 사그라하스의 전투에서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를 패퇴시키고 이베리아 반도의 패자가 되어 알모라비데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알모라비데 왕조가 성립되었다고 해서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의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던 동방지역과의 교류마저 끊어졌다. 이미 이슬람인들의 지배 중심지였던 알 안달루스 지역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여전히 톨레도는 카스티야 왕국의 영토였다. 오히려 알모라비데 왕조는 사라고사를 빼앗겼으며 발렌시아도 한 때 빼앗겼다가 되찾았다. 아라곤의 알폰소 1세가 계속하여 안달루스 지역으로의 원정을 감행하여 많은 수의 모사라브 인들이 북쪽으로 도망갔기 때문에 과거의 민족적인 구성이 변함에 따라 사회구조의 지탱도 힘겨워졌다. 결국 알모라비데 왕조는 붕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제 2차 타이파 시대가 열린다. 이러한 내전을 다시 진압한 것은 역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알모아데인들이었으며 이들은 1170년 모든 타이파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알모라비데 왕조보다 더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던 알모아데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212년 나바스 데 톨로사에서 가톨릭 교도들에게 패배하면서 결국 3차 타이파들이 출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러한 타이파들은 1492년까지 남아있게 되는 그라나다 왕국을 제외하고는 점차 가톨릭 왕국들에게 통합되어 멸망하였다. 이렇듯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 멸망 이후의 혼란과 그 중심지역이던 알 안달루스의 군사적 우위 상실은 가톨릭 왕국들에게 국토 회복을 대대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배경을 제공하였다.
750년 무렵의
이베리아 반도
녹색 지역이
우마이야 왕조의 영토
1037년의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초록색은 이슬람 영토로 여러 타이파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
1200년 경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

3. 무슬림 국가의 붕괴
이러한 레콘키스타의 영향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후 우마이야 왕조는 사실상 멸망하고 무려 28개의 소규모 국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마저도 계속된 레콘키스타로 인해 줄어들었다. 타이파는 각종의 민족집단들을
참고문헌
*참고문헌
정규영. 2001. “아랍어가 서구에 끼친 영향에 관한 고찰”.『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11집. 한국이슬람학회. pp. 179-193.
정규영. 2005. “중세 이슬람 문명이 근대 서구문명에 끼친 영향”.「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15집, 1호. 한국이슬람학회. pp. 13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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