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초기 `호족연합정권설`에 관한 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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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초기 `호족연합정권설`에 관한 비판적 검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머리말

1. 豪族聯合政權說의 이해

2. 연정설의 논점과 비판
(1) 후삼국기 歸附관계와 重幣卑辭
(2) 왕건의 결혼정책 검토
(3) 고려초기 중앙관제의 성격과 역할
(4) 고려초기 지방제도의 성격

맺음말
본문내용

태조의 결혼정책은 일반적으로 유력 호부층들과의 결합과 고려왕실의 번성을 위한 많은 자녀의 필요성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특히 이기백씨는 태조의 많은 후비들 대부분이 정책적 결혼에 의한 것으로 각지의 유력 호부층들과 끊을 수 없는 결합을 굳게 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냐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연정설 구축에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조의 결혼을 호족연합정권의 유지나 미약한 왕권을 보완하기 위해 강력한 호부층들을 주위에 두어 끊을 수 없는 결함을 굳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결혼이라고 일률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겠다. 첫째로 태조의 결혼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 졌으며 29명의 후비가 대등적 위치가 아닌 황후와 부인의 이중적 구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다양한 성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비들 가운데 왕후에 봉해진 6인 중 신라의 종실인 신성왕태후 김씨를 제외한 5인과의 결혼은 고려창업 전의 일이다. 그리고 태조의 국구가 된 인물들 대부분은 朴英規의 예에서와 같이 金石之約을 지켜 納妃시키거나 본인들의 공로에 대한 포상차원에서 국구로 삼아 사회적 신분을 높여주는 방법으로 특별 우대한 대상,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시기 태조의 결혼은 豪族聯合政權의 유지나 왕권을 보완하기 위한 유력 호족을 주변에 끌어들이려는 정략결혼의 의미 보다는 비부들을 왕실과의 결혼의식을 통해 국구로 삼아 사회적 신분을 높여주는 방법으로 특별우대 혜택을 주는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3) 고려초기 중앙관제의 성격과 역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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