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한국, 중국, 일본의 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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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류학] 한국, 중국, 일본의 미의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한중일 정원 미의식(건축)
2. 한중일 의복 미의식
3. 한중일 미인상
본문내용
감성적•주관적 작용과 지성적•객관적 작용이
긴밀하게 융합하여 형성

예술에 있어서는
미적 창작•미적 향수(美的享受 : 美的觀照) 등,
미적 태도 일반에서의 정신적 활동

우리가 비교할 문화적 미의식은
자연•생활 문화 일반에 작용하는 미적 태도


◈ 유교의 영향이 반영된 한복

전통 한복이 완성된 조선후기
신분적 차별, 그에 따른 형식을 강조한 복식문화
남존여비사상과 내외법 -> 여성이 외출 시에 얼굴을 가리게 하는 너울, 쓰개치마,
장옷, 천의 등 매우 발달


◈ 개항 이후,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진행하는 가운데 완성된 한복

국가차원의 의제개혁: 서구화와 간소화가 골격

의제개혁은 갑신의제개혁(1884), 갑오의제개혁(1894), 을미의제개혁(1895) 등 3 차례
두루마기(외출복)와 검은색으로 통일: 남녀 차별, 신분제의 모순의 철폐, 민족적 동류의식 형성

일제치하 진행:
백의 착용금지 Ex) 검은 물총과 시장출입 금함.
1940년 ‘몸빼 바지’와‘국민복’ 전시 의복과 ‘양복’ 착용 강제.
목적: 여성노동력 착취, 한국 전통문화가 비합리적, 뒤떨어진 것이란 식민담론 조성,
민족의식 억압의 정치적 목적, 직물시장의 확대라는 경제적 목적.

특히 국모의 시해사건 이후 단발령이 단행됨으로써 저항은 더욱 거세졌음.
유교적 관념+ 일본의 내정간섭+ 친일내각의 횡포, 강압적 시행에 민족적 저항심

결과적으로 간소하고 통일된 의복으로 변모, 1920년 양복착용 크게 성행.(문화적 헤게모니)


2. 평상복

◈ 저고리
남:삼국시대의 긴 저고리가 짧아지고 안섶, 겉섶이 넓어지고 품도 넓어짐. 조선 후기에는 깃이 동그래 깃으로 변하여 현재 남자 저고리로 정착.
여:삼국시대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며 조선 중기를 기점으로 저고리 길이가 짧아짐.

◈치마
조선시대 치마는 신분 표시 수단:
양반 부녀: 넓고 긴 치마에 금박을 놓음> 일반: 민 치마> 그 밑은 두루치> 백정: 치마 가장자리 검은 헝겊.
조선시대 독특한 실루엣: 속옷 위에 8겹 겹쳐 입어 둔부를 부풀렸음.
이런 복식 유행의 흐름은 조선 후기 여성의 복식 심리로 간주.

◈ 마고자
마고자는 만주인의 의복이나, 대원군이 만주에서 유거 생활에서 풀려 나와 귀국할 때 소개, 널리 착용.
조선시대 말기 이후에 특수계층의 집안에서 방한을 겸한 사치복으로 등장.
마고자는 일명 덧저고리라고도 불리며, 방한용으로 남녀가 같이 널리 착용.
형태는 저고리와 같으나 깃과 섶 옷고름이 없음.

◈ 도포와 장옷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사대부와 유생의 평상 예복. 초록색, 다홍색, 미색, 옥색 등 다양.
장옷은 조선시대 후기 부녀자의 내외용 겉옷으로, 초록 명주에 백색안 +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를 단
두루마기 형태로 ,외출 시 머리에 쓰고 양쪽 고름을 잡아 얼굴 가리게 착용.

◈바지
북방 유목민이었던 우리 민족에게 꼭 필요했던 복식으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착용.
남자 바지는 통이 넓어서 좌식 생활에 편리한 옷이어서 가내 생활에 애용.
겨울에는 명주 바지에 솜을 넣어 지으면 겨울철의 방한용.

에도시대 (1603∼1867)

1. 염직산업의 발달로 질적 향상: 계층에 맞는 문양, 유카다(浴衣)와 같은 서민들의 간편한 복식 형성.
오비(帶)가 발달. 현재와 같은 기모노의 형태 갖춤.
2. 신분제: 신분에 따른 복장의 규정. 농민의 의류는 마와 목면에 한정. 다만 촌장과 농민의 부인은 명주까지 허용.

3. 1543년 8월25일 포르투갈인이 다네카섬 도착
: 선교의 대가로 일본에 선물한 목록 중에서 덴뿌라, 메리야스, 빵, 나사, 카스텔라 등은 일본화한 포르투갈어 고유명사들. 그들의 옷은 매우간편하고 편했으므로 개량기모노를 만드는 데에 영향.

◈ 메이지유신 (1868∼)

1. 양복 도입부터 시작:
남자, 양복은 고급관료임 드러내는 지위의 상징 급속도로 퍼짐.
여성, 말년에 양복이 일반화. 젊은 여성들에게 기모노 밑에 셔츠 + 구두 유행
양장점에서 생산된 양복이 대량 유통, 위에서부터 기존 전통의복을 예복으로 전환한 정책.
선진문물의 표상이 된 양복이 일본사회에서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했기에 양복이 유행하고 급속 보급.

2. 혼합 의복 형성: 기모노 밑에 셔츠 +구두.
한국&중국 ->열강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근대화가 진행, 고유의복을 착용하여 자기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두루마기와 치파오 등으로 단순화한 경향
일본은 서양문물 수용에 적극적인 태도, 종류와 형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이어짐. 일찍부터 전통의복이 평상복의 위치에서 벗어나 예복화하였고, 양복이 그 자리 대신함.


코몬 小紋
작은 무늬라는 뜻의 코몬
가장 캐주얼한 기모노

소매, 어깨, 앞섶 등에 작고 같은 문양이 전체에 연속해서 놓이는 것이 특징.

기본적으로는 사교용 기모노

격식 있는 문양이나 멀리서 보면 이로무지처럼 보이는 섬세한 무늬의 기모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입음.
한국
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유교의 영향이 점차 강해짐, 다른 세력과의 충돌
남성에 순종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진취적인 면을 지닌 여성상으로 고대와 17세기 이후의 미인상의 과도기
외세와의 충돌이 빈번하였고 이런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역할을 유교적 질서로부터 배정 받은 남성의 권위가 상승하게 되고 여성은 자연스레 전투를 수행하는 남성에게 은혜를 입고 순종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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