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 이상 자작 소설 동해의 삽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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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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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 동해의 삽화
2-1. ‘변동림’으로 살펴보는 당대의 신여성, 연애, 사회적 포지셔닝의 한계
2-2. 19세기와 20세기의 접점에서
2-3. 童骸 - 제목의 의미와 언어
3. 맺으며
본문내용
② 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

“늼재는 자객입니까?”

「동해」의 1장인 “촉각”과 2장인 “패배 시작”에서 이 자객 놀이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나는 현실로 하나는 꿈으로 처리한다. 1장의 나는 방에 누워서 내 옆에 누운 여자와 내가 누구인가 연구한다. 칼을 꺼내는 여인을 자객으로 착각하고 공포를 느낀다. 나쓰미깡을 깎기 위함을 알고 분위기는 반전된다. 2장에서는 이발소이다. 이발사가 목에 칼을 겨누자 “늼재는 자객입니까?”를 다시 묻고 싶어진다. 그리고 자신은 아내가 있으니 아내와 이발사에게 같은 농을 던지지 말 것을 생각하자 이발소는 나의 신방으로 변한다. 나는 엊저녁에 결혼했음을 자각하며 1장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프로이트는 저작인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손자가 엄마로부터 떨어져 있는 동안의 두려움을 실패를 던졌다 당기면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fort/da 놀이로 이겨냈다고 서술한다. 프로이트는 이 놀이를 ‘분리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해석한다. 이상 역시 언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지 모르는 문란한 여성 ‘임’이를 ‘칼을 겨눈 자객’으로 치환하고, 임이가 떠날지 모른다는 공포를 이러한 반복놀이로 극복하려 한다. 프로이트 손자의 엄마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실패’처럼 위험하지 않은 사물로 치환될 수 있다. 하지만 임이가 떠나는 것은 나에게 죽을만큼 아플 것이기 때문에 칼을 겨눈 자객으로 치환된다. 여기서 앞에서 결혼이며 ‘임’에게 심드렁한 ‘나’는 사실 포즈에 불과했음이 밝혀진다. 말하자면, 나의 임이에 대한 태도는 심드렁이 아니라 좋아서 괜히 더 건드려보고 싶은 사춘기 소년의 심보나, 계속 극한의 상황으로 임이를 몰아놓고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을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애정결핍에 가깝다. 소설의 나는 칼을 쥔 손으로 임을 찌를까 나를 찌를까 윤을 찌를까 고민하다가 결국 “방울지지 않는 눈물”을 흘린다. “내 입에서 복수라는 말이 떨어진 이상 나만은 내 임이에게 대한 애정을 있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③ 낮의 거리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개화기 이전, 밤길은 여성들의 공간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여성들의 외출은 낮이건 밤이건 애초에 지양되는 일이었다. 낮의 거리는 남성들에 의해 점유되었고, 여성들은 일을 다 본 남성들이 쉬고 있는 밤에야 얼굴을 가리는 장옷을 어둠으로 가려진 길을 나섰다. 온 몸을 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옷까지 쓰고 암암리에 외출하던 여성이 정강이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단발머리를 하고 낮을 활보하며 ‘임’처럼 스스로를 인정해주기를 외쳤을 때 남성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위협과 모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는 19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