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경상남도 합천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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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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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합천군(역사)
해인사(海印寺)
해인사대장경(海印寺大藏經)
최치원(崔致遠)
합천묘산묵와고가(陜川妙山默窩古家)
합천영암사지(陜川靈巖寺址)

본문내용
〔고 대〕 이 지역은 낙동강에 임한 동부의 초계지역, 황강이 관류하는 합천지역, 남강 상류의 삼가지역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은 합천댐 수몰지구 조사에서 밝혀진 대로,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제각기 문화권을 형성하여 삼국시대 초기에는 이미 크고 작은 부족국가들이 이 지역에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합천지역의 다라(多羅) 또는 대량(大良), 초계지역의 초팔(草八), 신번(新繁)지역의 신이(辛爾) 등의 이름은 내외 문헌에 일찍부터 등장하는 국명들이다. 이러한 나라들은 고령지방의 대가야(大加耶)나 창녕지방의 빛벌가야〔比自火加耶〕 세력권에 속했던 가야연맹의 일원으로, 그 중에서도 합천지역에는 상당히 유력한 나라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는 555년(진흥왕 16) 창녕의 빛벌가야를 병합하고 이 곳에 하주(下州)를 둔 데 이어, 562년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면서 합천지방까지 진출하였다. 이어서 565년에는 창녕의 하주를 합천으로 옮겨 대야주(大耶州)를 설치하여 백제에 대비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642년(선덕여왕 11) 백제의 장군 윤충(允忠)이 대군을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포위, 공격하자 도독 김품석(金品釋)은 가족과 함께 자결하였으며, 그의 막료로 있던 대야주 사람 죽죽(竹竹)은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삼국통일 후인 676년(문무왕 16) 대야주는 강양군(江陽郡)으로 강등, 개명되어 삼기현(三岐縣 : 본래 三支縣 또는 麻杖)·팔계현(八谿縣: 본래 草八兮縣)·의상현(宜桑縣 : 본래 辛爾縣)의 3개 현을 영현으로 거느렸다. 802년(애장왕 3) 순응(順應)·이정(利貞) 두 대사가 해인사(海印寺)를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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