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의 고분벽화와 고령 고아동 고분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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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의 고분벽화와 고령 고아동 고분벽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분벽화의 개념과 기원
1. 고분벽화의 유래와 형성
2. 고분벽화의 개념, 정의, 기능
3. 고분벽화의 유래

Ⅲ. 한국 고대의 고분 벽화
1. 고구려의 고분벽화
2. 백제의 고분벽화
3. 신라의 고분벽화

Ⅳ. 고령 고아동 벽화
1. 고령 고아동 벽화란 (개괄)
2. 고령 고아동 벽화의 의의와 평가
3. 고령 고아동 벽화의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국고대의 고분벽화와 고령 고아동 고분벽화



Ⅰ. 머리말
삼국은 예로부터 왕이 죽고 장사를 지내면서 무덤을 만들었는데 왜 무덤의 벽에 그림을 그렸을까? 도대체 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의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덤에 묻힌 왕과 벽화의 관계는 어떠한가? 라는 생각을 어쩌면 하게 된다. 아마 고분벽화는 중국에서 전래되어 왔으리라 생각되는데 이 것 때문에 중국과 가장 인접한 고구려가 고분벽화의 기술과 질적인 면에서 삼국에서가장 잘 발달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가 먼저 고분벽화를 수용하면서 점차 기술이 남하해서 백제와 신라에 까지 전파가 되었는데 남방에 있는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보다 고분벽화가 많이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출토된 고분벽화의 종류도 많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고분벽화가 출토 지는 주로 옛날 고구려 영역이었던 압록강유역(초기 고구려 도읍이 있는 국내성 지대), 대동강유역(평양이 고구려 도읍 이었을 때)에서 대다수가 출토 되었을 정도면 우리의 유적 답사 장소인 고령 고아동 고분벽화를 언급하기 전에 고분벽화의 개념과 의미를 먼저 언급하고 고구려 이 외의 삼국시대 고분벽화의 의미를 먼저 알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Ⅱ. 고분벽화의 개념과 기원
1. 고분벽화의 유래와 형성
고분벽화란 고분(古墳)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화폭으로 삼아 완성된 그림이다, 본래 고분이란 ‘옛날의 무덤’을 일컫는 것으로 고분 속에는 죽은 자의 관 이외 여러 가지 부장품이 함께 묻혀 있고, 특수한 내부 구조와 출입구가 있다. 그리고 그 무덤 안에 벽화를 그려 장식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나라에도 널리 퍼져 있던 관습으로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내세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벽화고분은 백제, 신라, 가야에도 모두 있기는 하였으나 고구려가 유명할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다량의 벽화고분이 남아 있어 그 의미가 크다. 또 고구려의 고분 전체가 벽화고분은 아니며, 사실은 여러 고분들 중에서 일부의 고분이 벽화로 장식되었던 것이다.
고분벽화가 그려지기 이전 세계 곳곳의 옛 무덤 가운데에는 무덤의 주인공 외에 그의 가족이나 시종들까지 함께 묻힌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는 생전에 신분이 높았던 사람들이 저 세상까지 삶을 연장시키기 위한 순장이다. 이 장례방식은 사회적으로도 손실이 클 뿐 아니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순장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금지되었다. 대신 무덤 안에 실물 모형을 만들거나 부장품을 함께 묻어주는 장례방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또 살았을 때 누린 영광과 죽음 이후에 원하는 삶을 무덤의 벽화 천정에 그림으로 장식하기 시작하면서 고분벽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장례문화의 변천에서 신라와 가야에서는 실물을 대신하는 모형을 만들어 무덤 안에 껴묻는 순장 대체 방식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나, 고구려는 일찍부터 무덤 안을 그림으로 장식하여 죽은 자의 내세를 기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풍습의 결과, 고구려는 대략 3세기 말 이래 7세기 전반까지 지속적으로 고분 속에 벽화를 그렸는데, 이 고분벽화들이 바로 한국 회화의 시원으로 회화의 근원을 파악할 자료를 제공해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한국 회화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이유는 벽화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들이고, 화면의 구성, 그림의 내용, 예술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고구려 이외의 백제와 신라, 가야의 고분은 흙벽으로 이루어진 토총이 대부분이어서 발견 사례도 적다. 그리고 벽화를 그렸었다 하더라도 남아 있지 않고, 그에 대한 역사적 자료도 거의 없으므로 무덤 속에 벽화를 즐겨 그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회화 작품으로 전거를 뚜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우리나라 회화로는 고구려 안악 3호분의 고분벽화가 그려졌던 4세기 전후의 연대로 보는 것이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명료한 채색오과 필선묘사의 흔적으로 보아 적어도 이 시기에는 일반 회화도 그려졌음을 추측할 수 있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없다.

참고문헌
◆단행본◆
1. 강승환, 2011,『우리도 잊어버린 우리 문화 이야기 : 한국 고대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너울북
2. 강인구, 2002, 『백제왕릉 피장자 추정』, 『삼국시대연구』, 학연문화사
3. 권주현. 2004, 『가야인의 삶과 문화』, 도서출판 혜안
4. 권주현, 2004, 『부산'경남역사연구소』, 『시민을위한 가야사』, 집문당
5. 박아림, 2009, 『고구려 고분벽화와 동아시아 고분 미술비교』, 집문당
6. 박철수, 2003, 『가야의 유물과 유적』, 학연문화사
7. 이종수, 2011, 『벽화로 꿈꾸다 : 8가지 테마로 읽는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 하늘재
8. 정호섭, 2011,『고구려 고분의 조영과 제의』, 서경문화사
9. 전호태, 2000,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구』, 사계절
10. 전호태, 2005,『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한국의 탐구 30), 서울대학교출판부

◆논문◆
1. 공주대 백제문화 연구소, 1991, 「백제 무령왕릉」
2. 국립공주박물관, 2004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
3. 안병찬 외 4명, 2005, 「고구려 벽화의 이미지 복원」『연구총서 03』, 고구려연구재단
4. 전고태, 1992, 「가야 고분벽화에 대한 일고찰」
5. 정운용, 1999, 「순흥 읍내리벽화고분의 신라사적 의의」『백산학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