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관광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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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주 관광 답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절 조사개요
1. 답사목적
2. 답사일정 및 답사지 소개
3. 진주 시 현황



제2절 진주 시 축제
1. 진주지역 축제소개
2. 진주 유등 축제
3. 해외 유사 축제
4. 발전방안



제3절 지역관광자원 개발
1. 지속관광자원 개발
2. 체험관광자원 개발
3. 문화관광자원 개발



제4절 결론
1. 진주관광 발전방안



본문내용
제1절 답사 개요

1. 답사목적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남강에 등을 띄워 왜군에 도하를 저지하고 멀리 떨어진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하여 진주성과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축제를 2002년 시작하여 1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매년 10월이면 진주 유등축제를 보기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진주성과 그 지역 일대의 매력 있는 관광 소재를 남강 위 유등을 띄우는 행사를 마련함으로써 역사와 현대적 관광매력 요소와의 결합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축제는 지역경제 발전과 관광문화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이번 답사의 목적은 10여년이 흐른 지금 남강 유등축제와 진주시의 장·단점 및 개선사항
을 분석 및 제시함으로써 향후의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답사일정 및 답사지 소개

답사 일정

일 차
일정 내용
1일차
숙소 → 진주성 → 촉성루 → 창렬사 → 국립진주박물관 → 축제→ 숙소
2일차
숙소 → 진양호→ 부산


(1)진주성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진주시 본성동과 남성동에 걸쳐 있다. 둘레는 1.7km이고, 1592년 진주대첩인 제1차 진주성 전투와 7만의 민관이 전몰한 제2차 진주성 전투의 배경 무대이다. 내부에는 임진왜란 때 지휘소로 사용된 촉석루와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에 떨어져 죽은 의암과 의기사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전몰한 호국선열들을 모신 창렬사와 호국사가 있고, 김시민 장군의 동상과 전공비가 있다. 다산 정약용, 매천 황현, 수주 변영로, 명기 산홍 등 진주의 충절을 노래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리고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도 이곳 진주성 안에 있다.


(2) 의암과 의기사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안고 떨어져 죽은 바위이며,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7호이다. 이 바위의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는 1629년 정대륭이 쓴 글이다. 이 바위가 붙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며, 바로 뒷 쪽으로 의암사적비가 서 있다.
의기사는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 둔 사당이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이다. 다산 정약용의 중수기와 더불어 을사조약 때 한탄을 하며,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의 시판과 구한말 진주기생으로 산홍의 시판이 걸려있다.



(4) 촉성루



촉석루는 임진왜란 때 지휘소로 사용되던 누각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8호이다. 4개의 현판에 시인 묵객들의 시판을 볼 수 있다. 강 건너에서 보는 촉석루가 가장 아름답다. 바로 촉석루 앞에 있는 바위가 의암으로,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안고 남강으로 투신한곳이다.

(4) 창렬사



창렬사는 1593년 7월 29일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서 지은 사액 서원으로, 고종 5년 흥선대원권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서원으로 김시민 장군, 최경회 장군 등의 선열들을 모셔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