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국사]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서론
** 본론
Ⅰ.연산군
1. 불운한 출발
2. 사화의 시작
3. 폐정의 원인
4. 중종반정과 몰락
Ⅱ. 광해군
1. 반정(反正)과 쿠데타의 사이
2. 서자의 둘째 아들로 세자에 책봉되다
3. 온갖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다
4. 즉위하자마자 각종 개혁 추진
5. 누루하치 움직임에 대비하여 무기 생산에 돌입
6. 광해군의 업적과 몰락
Ⅲ. 연산군과 광해군의 비교 (광해군의 재평가)
** 결론
본문내용
그런데 즉위초에는 아직 전조(前朝)의 치평 기운이 남아 있고 또 인재와 사림이 성한 가운데 어느 정도의 질서는 유지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4년째부터는 드디어 패악한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 5∼6년 동안에 두 차례나 큰 옥사를 일으켜 많은 사류(士類)를 희생시키는 참극을 벌였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와 1504년의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이 두 사화는 물론 당대 정계의 난맥상 속에서 생겨났던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또한 연산군 개인의 성품이 많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에도 문제는 있었다. 무오사화는 《성종실록》 편찬 때 그 사초 중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발견됨으로써, 이에 관련되었던 사림학자들이 많이 참화를 당하였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