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대우그룹와 김우중씨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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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영학] 대우그룹와 김우중씨의 흥망성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대우발전사
1) 대우의 발자취
2) 대우실업의 설립
3) 재벌화도모
4) 최대재벌완성
3. 대우사태
1) 관련기사
2) 김우중회장의 행보
3) 대우사태일지
4) 금융감독원의 입장
5) 한나라당 보도에 대한 입장
4. 대우해체과정
1) 진행과정
2) 대우해체원인
3) 현재 대우계열사
5. 결론 및 시사점

본문내용
1. 서론

대우는 이제 지난 대한민국 기업사에 하나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된 것도 이미 5년이 지났다. '유동성 확보방안'이라는 명목 하에 1999년 7월이었다. 한때나마 '세계경영'으로 기치를 올리던 "세계경영 대우가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은 이날 종말을 맞이하였다. 한때 대우는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요, 삼성이나 현대가 이룰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것을 이루어 갔던 이른바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고, 대우 사람들은 지금도 지난날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 조원은 지금 경영학도로써 '통합경영'이라는 수업을 통해 여러 유수기업인들의 사례를 직접 듣고, 공부하며 그들의 성공사례를 습득하고 있지만, 사실 유수 기업들의 실패한 사례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제는'사라져 버린‘ 대우의 사례를 다루는 것은 우리의 어릴 적 위인의 하나였던 발명왕이자 GE의 설립자인 토마스 에디슨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격언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미 대우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수많은 책과 논문, 신문기사들이 나와 있고, 지금도 여러 시각에서 접근 중이다. 우리는 그 자료를 가능한 한 모두 검토하고, 연구하고, 토론하여 이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김우중 곡예사

'세계경영 대우'는 이제 역사가 되고 있다. 대우 그룹이 해체된 것도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유동성 확보 방안'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해체 작업이 발표된 것은 1999년 7월19일 이었다. 한때 재계 2위까지 대우를 끌어올렸던 '세계경영'은 이날 허무한 종말을 맞았다.
세상은 대우를 잊었지만 원념의 세월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법정에서는 현재까지도 대우 뒤처리 송사가 진행 중이고, 대우 사람들은 지금도 지난 세월을 곱씹으며 회한의 가슴을 쓸어내린다. 과연 그때 대우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가?
외환위기에 이어 또 하나의 거대한 충격파를 몰고 왔던 그 해 여름의 힘들었던 날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당대 최고였던 한 곡예사에 관한 전설이 있다. 작은 막대 끝에 하얀 접시를 올려 절묘한 솜씨로 서서히 가속도를 붙인다. 그리고 접시 한 개가 돌기 시작하면 곧바로 또 다른 접시를 돌리면서 관중들을 사로잡는다. 바로 그 사람, 막대기는 길게 열을 지었고 열이 길어질 때마다 전설의 곡예사는 더욱더 부지런히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녀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이 전설의 곡예사가 그의 빈손에서 장미를 피게 했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전 대우그룹 회장이며 전경련의 대표였고 '세계는 좁고 할 일은 많았던'사람.
세이징의 접시, 폴란드의 접시, 서울의 접시, 우즈베키스탄의 접시, 아프리카의 위태
참고문헌
「한국의 조선산업 전국경제인연합회 1997
「한국재벌형성사」이한구 1999
「재벌이력서」이추택, 한국일보 1993
「대우 자살인가 타살인가」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2002
「한국의 조선산업」 전국경제인연합회 1997
「대우 구조조정 발표관련 질의답변」금융감독위원회 1999.7.19
「대우자동차 하나 못사리는 나라」김대호 (주)사회평론 2001
wfile.fss.or.kr/data/ko/nws/nbd/이한구.hwp 2001 한나라당 보도에 대한 입장
한국경제신문 1999년 7월 20일 조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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