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발전사] 우리나라 화장품광고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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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화장품 모델은 단순히 모델로서의 기능과 역할 이외에도 한 시대의 가치관과 여성상, 트렌드 등을 읽을 수 있는 직접적인 거울이 라고 할 수 있다. 화장품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 미인상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1922년에 시작된 박가분 광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광고이자 No Model로 이루어졌다. 사진이 귀하던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듯 빼곡한 카피로만 만들어진 박스형식의 광고엔 ‘살빛이 고와지고 죽은깨 없어지는 박가분을 화장하실 때 잊지 마시옵’ 이라는 문구와‘귀부인은 항상 준비하시오’라는 카피가 압권이다. 일제시대였었던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화장품 광고에 본격적인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결전 하 근로 여성의 건강미에는 반드시 영양크림으로! ’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사회적으로 어려웠던 그 시대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처음 개최되는1953년, 여성의 신체 균형에 대한 관심은 보다 더 높아졌다. 이 떄부터 직업 여성을 중심으로 서양식의 새로운 화장법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영화 속 여배우들의 스타일이 그대로 유행했다. 청순한 이미지의 오드리햅번과 관능적 이미지의 마릴린먼로가 모든 여성들이 닮고 싶은 모델의 기준이 되었고, 이들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최초의 화장품모델은 김보애

1956년‘ABC구리무’라고 불리던 크림제품광고 속에 여성인 우리나라 최초의 모델은 김보애씨. 색조제품이 전혀 없던 당시 김보애씨는 투명한 피부의 타고난 미인으로 최초의 화장품 모델로 활동을 시작해 최고의 여배우가 된 첫 번째 케이스가 되었다.

1958년, 육체파 글래머 모델이 주목 받다

1958년 화장품업계에서도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태평양에서 지금의‘향장’전신인‘화장계’라는 국내 최초의 미용지를 탄생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모델은 당시 최고의 인기 여배우이자 육체파 글래머인 이빈화가 창간호의 주인공으로 실렸다는 점. 그 다음으로 9월호, 10월, 11월, 12월호에 각각 김지미, 엄행란, 김혜정 등 인기 여배우들이 표지에 잇달아 등장함으로써 그 시대의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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